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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 리결사 부주장과 연변대학과의 아름다운 인연(김병민)

조글로 潮歌网 2020-09-15


조선족 사회





리결사 부주장과 연변대학과의 아름다운 인연


김병민 전 연변대학 교장



연변에 오신 조남기 장군과 함께(좌로부터 리결사, 조남기, 황삭)


2004년 전국인민대표대회 기간에 당시 중앙정치국위원이며 중공 광동성 성위서기였던 장덕강 동지는 자신이 주당위서기로 임직할 때 함께 일했던 여러 지도자들을 초대한 적이 있었다. 이 자리에 리결사 동지와 나도 초청을 받고 참석하였다. 그때 장덕강 동지는 리결사 동지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리결사 동지는 상해지식청년으로 연변에 와서 자신의 후더운 인품과 뛰여난 지혜, 능력으로 연변의 주요한 령도간부로 성장하였습니다. 리결사 동지는 우수한 녀성간부일 뿐만 아니라 뛰여난 업적을 쌓았습니다. 그래서 연변인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장덕강 동지의 평가에 그 자리에 계시던 조남기, 리덕수 등 10여명 지도자들이 모두 동감을 표시하였다. 리결사 동지는 장덕강 동지의 평가에 감사를 드리고 나서 “과찬입니다. 연변은 저의 두번째 고향입니다. 여러 지도자동지들의 배려와 연변인민들의 기대에 비하면 제가 한 일이 너무나 보잘 것 없습니다. 정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하고 겸허하게 말했다. 


리결사 동지는 상무부주장(이하 부주장으로 략함)을 지낼 때 연변의 교육과 과학기술 분야를 책임졌다. 그는 연변대학의 발전에 대해서도 지극히 관심하였으며 민족교육의 발전에 대한 전략적인 사고와 강력한 추진력을 과시하였다. 


훈춘현 경신향 이도포대대 제3소대 하향지식청년시절의 리결사 동지(오른쪽)


그는 연변대학을 위해 주로 두가지 큰일을 했다. 하나는 연변대학 약학원의 발전을 위하여 온갖 심혈을 기울인 것이다. 그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연변대학 약학학과의 기초에서 연변조선족자치주와 연변대학의 합작으로 연변대학 약학연구센터가 설립되였다. 그는 약학센터를 가동시키기 위해 직접 자금유치에 나섰다. 그는 길림성정부와 연변조선족자치주정부에서 직접 투자하도록 사업을 추진하였으며 따라서 연변대학 약학원은 과학연구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고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약학개발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봉사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할 수 있었다. 그의 전략적인 사고, 전폭적인 지지와 성원으로 하여 연변대학 약학원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게 되였다. 교육부로부터 그 성과가 인정되여 박사연구생을 키울 수 있는 학과로 선정될 수 있었고 연변 오동그룹과 합작하여 박사후양성 류동참으로 될 수 있었다. 지금 연변대학의 약학원은 길림성 중점학과로 선정되여 인재양성과 과학연구에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연변조선족자치주와 연변대학의 합작으로 연변위생학교를 연변대학 간호학원으로 승격시켰다. 원래 중등전문학교에 지나지 않았던 연변위생학교는 현재 전국적으로 명성이 있는 간호학원으로 되였고 국가 일류학과 건설행렬에 들어갔으며 리춘옥 교수와 같은 국내외에 이름있는 중견교수를 배출할 수 있었다. 


리결사 부주장은 연변대학을 자주 찾아와서 조사연구를 진행하고 좋은 건의를 제기했는데 조금도 틀을 차리거나 문제를 억지로 내리먹이는 관료주의 작풍을 보여주지 않았다. 당시 연변대학 지도부 성원들과 여러 부처의 책임자들은 리결사 부주장과 한자리에 앉아 협상하고 토의하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연변대학 약학학과와 간호학과의 발전을 두고 오늘도 연변대학의 교직원들은 리결사 부주장에 대하여 고맙게 생각하고 있고 그의 뛰여난 교육과학 발전전략과 훌륭한 사업작풍에 대하여 감명깊게 회고하고 있다. 



연변대학 약학원 약학연구센터 성립대회에서 (앞줄 좌로부터 여섯번째)


2004년 연변대학 개교 55주년 개교기념대회 초청연회는 리결사 부주장이 연변조선족자치주를 대표하여 몸소 마련했는데 그의 격정에 넘치는 연설은 국내외 동문들의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았다.


“연변대학은 개교 55년이래 연변의 발전을 위해 중대한 기여를 하였습니다.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연변대학의 발전을 위해 중요한 책임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연변대학의 발전은 연변조선족자치주의 발전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리결사 동지는 이렇게 말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업에서 지행합일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그는 투철한 사업전략과 방법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열정이 넘치고 언제나 따뜻하게 사람들을 대해 주었으며 남을 도와주기를 즐겼다. 


2007년 연변대학에서는 캠퍼스 확장공사를 가동하였는데 거의 날마다 여러가지 애로사항에 봉착해 좀처럼 계획대로 건설공사를 진척시킬 수 없었다. 대부금을 해결하는 문제, 건설대상에 대한 검토와 상급의 비준을 받는 문제, 토지를 팔고 사들이는 문제 등등 여러가지 문제가 겹쳐서 나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연변대학 개교55돐 기념대회에서 축사하는 리결사 상무부주장


나는 난제에 부딪칠 때마다 리결사 부주장을 찾아갔는데 그때마다 그는 곧바로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군 했다. 특히 건설공사를 위한 대부금을 내는 것은 제일 큰 난제였다. 우리가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국가개발은행 관계부문 일군들이 연변 현지에 와서 대부금에 의한 건설대상에 대해 고찰하게 되였다. 물론 우리는 이런 일이 있는줄도 몰랐다. 그런데 리결사 부주장은 연변대학의 대부금 대출에 애로사항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다른 중대사들을 잠시 뒤로 밀어놓고 연변대학의 대부금 대출문제를 둘러싸고 국가개발은행 관계일군들과 협상을 벌렸다. 그 자리에 리용 서기와 나도 함께 참석했는데 실로 감동적인 장면이 벌어졌다. 리결사 부주장은 연변대학의 력사와 지역사회의 발전에 대한 공헌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나서 연변대학 캠퍼스 확장공사의 중요성과 시급히 대부금을 유치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하였다. 이에 국가개발은행에서 온 여러 부처의 책임자들도 크게 감동을 받았다. 그들은 즉석에서 연변대학에서 대부금을 대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표시하였다.


이 일이 있은 후 연변대학 대부금 신청은 국가개발은행의 심사에서 무난히 통과되였다. 리결사 부주장은 이 일을 시급히 실행하기 위하여 몸소 우리와 함께 길림성개발은행으로 가기까지 했다. 실로 그에 대한 고마움은 이루다 형언할 수 없다. 솔직하게 말해서 대학가에서 줄곧 교수와 과학연구나 관리했던 나는 애초에 대부금 유치의 수속절차마저 알지 못했다. 관련 문서를 보면 볼수록 머리가 아프고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이와 반면에 리결사 부주장은 이에 대해 너무나 익숙하였으며 그는 아예 우리를 대신하여 은행측과 협상하기도 했다. 그는 연변대학의 리익을 념두에 두고 수속절차, 리자지불, 담보조건 등을 두고 우리의 요구를 은행측에 조리정연하게 제기했다. 


그날 오전의 협상이 끝난 뒤에 원 연변조선족자치주 부서기이며 그때 당시 길림성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비서장으로 일하던 조병철 동지가 우리 일행을 초대하였다. 그는 정직하고 소탈하고 너그러운 분으로 정평이 나있었다. 그날 오찬 자리에서 그는 리결사 부주장을 “큰누나(大姐)”라고 불렀으며 칭찬의 말씀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큰누나”의 관심을 많이 받았고 사업에서도 지지를 많이 받았다고 했으며 리결사 부주장의 뛰여난 사업능력과 수준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라고 거듭 강조하였다. 


그날 저녁은 원 연변조선족자치주 주장이고 그때 당시 길림성 부성장으로 일했던 김진길 동지가 초대하기로 하였는데 우리 연변대학 일행도 참석하게 되였다. 김진길 부성장 역시 리결사 부주장을 무척 존경하였고 그의 업적에 대해 높이 평가하였다. 한편 김진길 부성장은 연변대학 캠퍼스 확장공사의 어려움에 대해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었기에 대부금 대출 등 사항은 리결사 부주장을 고문으로 모시고 자문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날도 리결사 부주장은 젊은 지도자들의 찬사에 거듭 과찬이라고 하면서 그들을 돕는 것은 자신의 당연한 소임이라고 거듭 말하였다. 

 

연길에 돌아온 후 리용 서기와 나는 리결사 부주장을 캠퍼스 확장공사 지휘부 고문으로 모시기로 했으며 이를 상의하기 위해 리결사 부주장을 찾아갔다. 내가 초빙의사를 제기하자 그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연변대학을 도와나서는 것은 무엇보다 먼저 저의 책임입니다. 저는 연변대학에 깊은 감정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젠 정년을 했기에 시간적 여유도 좀 있습니다. 연변대학을 위해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면 저에게는 큰 보람이 되지요.”


그는 자신의 의사를 밝히면서도 고문직은 견결히 거절하는 것이였다. 리결사 동지는 그동안 연변대학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했다. 하지만 우리는 단 한번도 례의를 갖추고 대접하지 못하였다. 이 일은 지금도 내 마음속에 걸려 있다. 


연변대학 연변조선족고급인재양성기지 제막식에 참가한 리결사 동지(오른쪽으로부터 여섯번째)


그가 정년을 한 후 나는 학교의 일로 그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내가 그를 보고 상해에서 연변에 온 지식청년출신이고 또한 민족지역의 지도자이니 회억록을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심스럽게 여쭈었더니 그는 “무슨 큰 일을 해낸 것도 없는데 회억록이라니요. 그건 필요없어요.”하고 사절했다. 내가 학교의 기자를 파견하여 취재를 하겠다고 했더니 그는 “나처럼 이미 정년을 한 사람은 선전을 해도 의미가 없어요.”하고 거절하면서 정년을 한 후 집에서 독서도 하고 등산도 하고 피아노도 배우는데 참으로 즐겁게 지내고 있다고 했다. 남들을 도와줄 일이 있으면 달갑게 나서서 무보수로 도와주군 하는데 이 얼마나 의미가 있느냐고 했다. 이처럼 그는 정년 후의 생활에 대한 투철한 리념과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리결사 부주장은 정년을 한 후에도 계속 연변대학을 관심하였다. 2009년 초 나는 리결사 부주장을 만난 자리에서 국무원전문가국의 지원을 유치했으면 좋겠다고 아주 어려운 문제를 내놓았다. 그는 즉시로 전문가국의 부장을 소개해줄터이니 전국인민대표대회 회의에 참가하는 기회를 빌어 찾아가라고 하였다. 나는 2010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 회의 기간에 짬을 내서 황건 처장과 함께 만부장(전문가국은 정부급 부서이므로 부장이라고 호칭했다)을 찾아가 우리 대학을 지원해줄데 대한 사항, 말하자면 외국의 전문가들을 초빙할데 대한 사항을 제기하였다. 만부장은 아주 열정적으로 우리를 접대해주었다. 전문가초빙에 필요한 자금지원은 교육부 소속 대학에만 주어지는 것이여서 직접 지원은 받지 못하였지만 만부장은 길림성전문가국에 건의할터이니 길림성전문가국의 전문가 초빙자금 지원을 받기에 노력하라고 했다. 이외에도 만부장은 기타 중외 합작항목들이 있으니 그걸 쟁취하라고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다. 전국인민대표대회 회의에서 돌아온 나는 우리 대학 관련부서에서 길림성전문가국에 보고서를 제출하였으며 국제협력연구과제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2012년 초, 연변대학 교장직에서 물러날 준비를 할 때였다. 리결사 동지가 전화로 올해 전국인민대표대회 회의 기간에 국가전문가국에 가보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때 나는 지금 국가에서는 외국의 전문가들을 모시기 위해 “천인계획”이라는 대형프로젝트를 가동하였는데 우리 대학에서도 고차원의 외국전문가 1명을 모시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대뜸 “만부장을 찾아가 보세요. 이미 정년은 했지만 내가 전화를 드릴 터이니 꼭 만나보세요.”라고 말하였다. 


2012년 전국인민대표대회 회의 기간에 만부장의 비서와 련계를 하자 전국인민대표대회 회의 휴식날이면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그 날 나는 학교에서 미리 작성해 가지고 온 “천인계획”보고서를 가지고 우리 대학 외사처 류처장과 함께 전문가국으로 찾아갔다. 만부장은 관련부서의 책임자(사장) 두 사람과 함께 나왔다. 그때 당시 만부장은 전문가국을 떠나 전국정치협상회의 상무위원 직무를 맡고 있었지만 전문가국에서 여전히 위망이 높았다. 그는 간단한 점심을 마련하였으니 함께 식사하면서 이야기하자고 하였다. 나는 송구스럽기 짝이 없었다. 만부장은 함께 온 관련부서의 책임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연변은 소수민족지역이고 연변대학은 특색있는 대학입니다. 그러니까 될 수 있으면 잘 지지해주기 바랍니다.”


그러자 두 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이어 만부장은 연변과의 인연, 리결사 부주장에 대한 인상 등을 두고 친절하게 이야기했다. 


“리결사 부주장은 상해의 지식청년으로 연변에 가서 뿌리를 박은 훌륭한 녀성간부입니다. 리결사 부주장은 고중생으로 연변에 갔지만 아주 열정적이고 두뇌가 명석하고 책임성이 강했지요. 저는 그때에 벌써 이 청년이 전도가 유망하다고 생각했지요.”


만부장의 적극적인 주선으로 관련부서의 책임자들은 우리를 각별히 열정적으로 대해주었고 “천인계획” 이외에도 공동협력을 위한 학자유치 프로젝트가 있으니 적극 쟁취해보라고 알려주었다. 


그 후 학교에서는 국가전문가국의 관심으로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천연물연구로 성과를 올린 리정준 박사를 “천인계획”의 외국전문가로 초빙하게 되였다. 전문가 1명을 유치하자면 인건비, 연구비, 생활보장비용 등으로 인민페 300여만원이나 투자해야 하였다. 고차원의 인재유치 계획인 셈이다. 세계적인 범위에서 인재를 선정 유치하는 국가계획에 들어간다는 것은 실로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었다. 지금 리정준 교수는 연변대학에 와서 학술연구에 전념하고 있는데 그의 훌륭한 연구성과를 기대해본다. “천인계획”에 의한 리정준 교수의 유치는 민족대학의 발전을 지극히 관심하는 만부장 그리고 리결사 부주장의 노력으로 이루어졌으며 우리 연변대학에 있어서 영원히 기억할 한페지로 남아있다. 


한 사람이 세상에서 태여나 사회나 남들에게서 무엇을 얻는가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것이 유일한 것이 아닌 것 같다. 한 사람의 가치는 사회나 남을 위해 얼마만큼 기여하는가에서 더욱 큰 의의가 있다. 나는 리결사 부주장이 사회와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것은 헌신적으로 사회를 위해, 남을 위해 일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리결사 부주장은 남을 도와주기 위해, 사회를 위해, 열심히 봉사하기 위해 머나먼 상해에서 연변을 찾아온 것 같다. 그를 우리 연변 여러 민족 인민들은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나는 교장직에서 물러난 후 리결사 부주장에게 더는 페를 끼칠 일이 없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존경심은 늘 가지고 있었다. 특히 나 개인의 사안에 대해서는 허물없이 이야기하고 그의 의견을 들었다. 내가 교장직에서 퇴임하자 여러 대학에서 초빙 건의가 들어왔다. 사립대학의 교장으로 오라는 초청도 있었고 국가 중점대학의 교수로 오라는 초청도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리주장에게 문의한 적이 있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교장을 하면서 고생을 했으니 휴식을 잘하고 건강을 챙기는 것이 첫째입니다. 김교장의 건강상황을 보아 다시 행정직에 나서는 것은 잘 맞지 않는 것 같군요. 교수로 초청을 받아 가신다면 학자로서 보람이 있는 일이라고 봐요. 정년을 한 후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해요.” 라고 했다.


그의 말을 듣고 나는 용기가 났으며 드디여 결단을 내고 다른 대학의 초청을 받기로 하였다. 


퇴임 후 교하 단풍골(枫叶谷)에서 남편 황삭과 함께(황삭,전 연변정협주석)


2014년 6월경, 나는 리결사 부주장과 그의 남편인 황삭 연변자치주 정협주석의 초대를 받은 적이 있다. 그들 주변의 적지 않은 사람들은 내가 연변대학을 떠난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물론 나는 그런 말들을 호의로 받아들였다. 그날 리결사 부주장 내외와 식사할 때의 화제는 다른 대학으로 간 것이 참 잘된 일이므로 축하한다는 것이였다. 그 무렵 내가 연길에 돌아오면 반갑다고 식사를 하자는 사람은 있어도 축하하기 위해 식사를 하자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리해가 간다. 축하를 받을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리는 반년 넘어 다시 만나 회포를 나누었다. 리결사 부주장은 나를 보고 학문을 하되 과로하지는 말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교장을 하던 사람이 명문대학의 초빙을 받았으니 연변대학에는 좋은 선전기회가 된다고 했다. 참으로 나에게는 큰 위안이 되는 이야기였다. 내가 리결사 부주장을 보고 연변대학에 대한 관심과 지지에 대해 더없이 고맙게 생각한다고 인사를 드리자 옆에 있던 황삭 주석이 엉뚱하게 “나도 연변대학을 위해 노력했는데 왜 나에 대해서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없어요?”하고 나에게 “장훈”을 쳤다. 


그러자 리결사 부주장이 싱긋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우리 집 황주석도 연변대학을 무척 사랑하지요. 연변대학은 연변의 문화상징이 아닙니까. 우리는 집에서 연변대학의 좋은 소식이 들려 올 때마다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기뻐한답니다. 우리 집 황주석은 일찍 조남기 서기의 부탁을 받고 연변대학의 언어사용문제를 열심히 조사하여 상급에 반영했으며 주위 부서기로 있을 때는 중외합작의 연변과학기술대학을 설립하는데 국가의 인가를 받아오느라 로심초사했습니다. 또한 연변의 5개 대학을 합병할 때 연변과학기술대학을 연변대학에 귀속시키는 문제에서 주위를 대표하여 상급과 교섭한 분이지요.”


그러자 황주석은 그때의 사연을 상세히 말하고 나서 “연변대학에 기여한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해야 하지요. 리동무만 치하하는 건 편견이지요.”하고 롱담을 해서 우리 셋은 허리를 잡고 웃었다. 즐겁게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모두 건강하고 즐겁게 살 것을 약속하면서 갈라졌다. 좋은 인연을 끈끈하게 이어가는 것이 인간의 큰 보람중의 하나인 것 같다.    


리결사 부주장은 “장고야 울려라”(리결사 작사, 김봉호 작곡) 라는 가사를 창작하여 연변과 조선족인민들에 대한 자신의 깊은 사랑을 표현한 적이 있다. 이 노래는 지금도 연변인민들속에서 널리 애창되고 있다. 



장고야 둥둥 울려라 둥둥 울려라

꽃치마 훨훨 춤춰라 훨훨 춤춰라  

불타는 아침해 밀림에서 두둥실 떠오르고 

장백산 폭포는 하늘에서 어절싸 흘러내리네 

산도 물도 장고에 맞춰 노래하며 춤추는 곳 

여기가 바로 우리의 연변, 행복한 락원


장고야 둥둥 울려라 둥둥 울려라

꽃치마 훨훨 춤춰라 훨훨 춤춰라

즐거운 노래는 천지에서 랄라라 울려오고 

도라지 춤판이 두만강변에 얼씨구 벌어진다.

사람마다 장고에 맞추어 노래하고 춤추는 곳

여기가 바로 우리의 연변, 행복의 락원


이 노래를 통해 작사자는 춤과 노래를 즐기고 슬기롭고 부지런한 연변인민들의 정서를 남김없이 표현하였으며 두만강과 장백산, 그리고 풍요로운 연변대지에 대한 깊은 사랑을 표현하였다. 


리결사 부주장이 1969년 상해지식청년으로 연변에 왔으니 이미 50년 세월이 흘러갔다. 그는 연변에 와서 마치 연변의 진달래인양 연변의 산야에 튼튼히 뿌리를 내렸으며 평생의 정열과 지혜를 연변의 건설과 발전에 고스란히 바쳤다. 소수민족지역의 간부는 민족지역과 민족을 사랑할 때라야만이 그 지역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다. 리결사 부주장이 연변과 연변인민을 무한히 사랑하듯이 연변의 여러 민족 인민들도 리결사 부주장을 잊지 않을 것이며 그의 건강과 만년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할 것이다. 


▣ (출처:《중국민족》조선문판  글/김병민  편집/리호남  조판/ 한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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