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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강일 추리소설] 도시는 알고 있다(12)

조글로 潮歌网 2020-09-15

우리 문단 신선한 활력소! 추리소설 작가 허강일!

극작가, 시인, 기자로서의 허강일이 펼쳐보이는 숨막히는 드라마!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한치 앞도 내다 볼수 없는 운명의 대결! 지금 펼쳐집니다.


 허강일  장편추리소설 

도시는 알고 있다


48


안과장에게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출근하자 습관 대로 메일을 열어보던 안과장은 하마트면 너무 기뻐 소리를 지를 뻔하였다. 

홍콩의 대형 투자회사에서 거금을 투자하겠다면서 자기에게 면담을 신청한 메일이 들어온 것이다. 은행에 출근하는 사람으로서 돈 만큼 좋은 것이 없다. 내 돈이든 남의 돈이든 맡겨만 주면 은인이다. 

상대방은 지나가던 길에 청도에 들린다면서 10일 오전 10시에 힐튼호텔 커피숍에서 만나자고 하였다. 일력장을 보니 오늘은 5일이다. 닷새가 남았다.

일주일간의 일정표를 꺼내보니 다행히 10일 오전에는 아무런 미팅도 잡히지 않았다. 안과장은 동의한다는 메일을 넣었다. 

10일 오전 안과장은 10시 50분에 약속장소인 힐튼호텔에 나타났다. 두세 사람씩 앉아 커피나 차를 마시는 사람은 보였으나 홍콩의 투자상인처럼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웨이터와 물어보니 10시로 예약한 사람이 하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9시 56분 되여도 그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안과장은 초조한 나머지 혹시나 만우절처럼 놀림을 당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까지 해보았다. 시침이 정확하게 10시를 향할 때 커피숍 북쪽켠에 있는 엘리베이터가 열리더니 깔끔한 옷차림의 녀인이 나타났다. 

녀인의 뒤로는 멋진 남자 둘이 선글라스를 끼고 녀인의 뒤를 바짝 따르고 있었다. 녀인의 키는 크지 않았고 연한 커피색 머리를 곱게 틀어올렸으며 얼굴은 윤기가 날 정도로 탱탱하였고 번쩍번쩍 빛나는 금테안경을 걸었다.

50대를 좀 넘긴 것 같은 녀인이였다. 녀인은 이리저리 둘러보지도 않고 바로 안과장이 앉은 좌석을 찾아왔다. 보디가드들은 녀인과 멀리 떨어져 멈춰섰고 주위를 살펴보며 낯모를 사람들이 녀인의 곁에 접근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다.

녀인은 거침없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건설은행의 안과장님이시죠?”

도도한 기품에 안과장은 주눅이 드는 느낌마저 받았다.

“네, 그렇습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홍콩우주투자회사에서 온 초선이라고 합니다.”

녀인은 핸드백을 열어 금빛이 반짝이는 정교한 명함통에서 명함장을 꺼내 안과장에게 주었다. 홍콩투자회사 중국지사 부지배인으로 되여있었다.

“이번에는 중국 대륙에 대한 고찰차로 왔습니다.”

“아. 그러셨습니까? 오신 걸 환영합니다.”

초선의 말을 들은 안과장은 고개를 숙이며 환영의 뜻을 표했다. 

“저는 오래동안 일본과 한국에 특파되여있다보니 중국에 대해서 잘 몰라요. 그래서 여러 경로를 통해 투자는 물론 재테크에도 능한 사람을 찾던 중 안과장님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찾아왔는데 실례가 되였다면 용서하세요.”

초선이라는 녀인은 가슴이 드러나 보일가봐 두려운 듯 왼손을 가슴에 대고 가볍게 허리 굽혔다. 

“아, 아니, 괜찮습니다. 저희들이야 반갑지요 뭐.”

안과장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저를 어떻게 알게 되셨는지요?”

안과장이 명함장을 꺼내서 건네면서 물었다.

“사실 저희 회사 인재 보물고에는 전세계 인재들의 정보가 상세히 입력되여있습니다. 안과장님의 정보도 거기에서 얻었구요.”

초선이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였다.

“아, 네.”

안과장은 홍콩의 투자회사 인재 보물고에 자기의 이름이 입력되여있다는 놀라운 소식을 듣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국제적인 재테크 전문가로 된 기분이였다.

“능력자들은 서로 만나서 더 큰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요즘 대세이거든요. 그래서 찾아왔는데 오늘은 그냥 간단한게 인사하고 이야기나 나눠보려구요.”

초선이 다소 직설적으로 나왔다.

“실례지만 움직일 수 있는 자금은 대체적으로 어느 정도인지요?”

은행계통에 오래동안 몸을 담근 고수답게 안과장도 다소 공격적으로 요건만 제기하였다.

“국제적인 투자회사이다보니까 저는 우리 회사에서 자금이 결핍해 투자 못하는 것을 한번도 본 적 없어요.”

초선이가 자부심이 넘치듯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의 원칙을 간단명료하게 말한다면 맞는 일에는 몇천만부터 몇백억원까지 투자하지만 틀린 일에는 일전 한푼도 투자하지 않습니다.”

국제투자자다웠다.

안과장의 고개는 저절로 끄덕여졌다.

“저의 판단으로는 안과장님이 가장 적임자입니다. 안과장님만 동의하시면 저희들은 안과장님이 시름놓고 사업하게 하기 위해 해변가에 별장을 하나 마련해줄 것입니다.”

“별장을?”

“네. 국제대형투자회사인 것 만큼 이미지가 중요하거든요. 사무실 겸 주거용으로 별장을 한채 마련해주는데 3년 이상 근무할 경우 별장을 본인의 이름으로 변경해드리겠습니다…”

해변가 별장 가격이 얼마인지를 잘 아는 안과장의 심장이 벌렁이기 시작하였다. 

“감사합니다만 저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 날엔가 잘려나가면 락동강 오리알이 되겠는데.”

안과장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최악의 결과가 생겼을 때의 일을 먼저 꺼냈다.

“소문과 같이 현명한 사람이구만요.”

초선이 가느다란 다리를 포개여 앉으면서 방긋이 웃었다.

“우리가 청도에서 찾는 사람은 단순한 재테크 전문가가 아니라 정보원이예요. 인맥이 넓고 은행업무도 잘 알고 재테크에도 일가견이 있는 사람, 분명하고 알차고 사유가 빠른 사람, 알 만하세요?”

초선이가 안과장의 눈을 직시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아, 그런 일이라면 생각해볼 만합니다.”

안과장이 흥분을 가까스로 억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과장님이 하실 일은 아주 간단합니다. 그저 저희들에게 투자대상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면 됩니다. 부동산개발도 좋고 광산개발도 좋고 영화제작도 좋고 암튼 돈이 되는 곳에는 돈을 거침없이 넣을 테니까 정보만 제공해주세요.”

초선의 설명을 듣는 순간 안과장은 동방편직의 부지가 떠올랐다. 이들과 손잡고 직접 개발하면 대박이 난다. 그러면 나는 대주주로 일확천금을 챙길 것이고…

“저의 손에 부동산개발에 좋은 땅이 몇군데 있습니다. 사실 지금 합작 파트너를 물색하고 있는 중이였습니다.”

안과장은 꼭 마치 동방편직의 공장부지가 자기 손에 들어온 것처럼 단언하고 말했다.

“좋아요. 기획방안을 제기해보세요. 가능성이 있다면 투자할 것이니까… 자규모는 걱정하지 말고…”

초선이가 얼굴에 가벼운 미소를 띄우고 말을 이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지 않을 거예요. 매 한건 성공할 때마다 투자액의 5%를 커미션으로 드리겠습니다. 물론 회사에서 주는 것이지만은…”

안과장의 가슴은 벌렁거리다 못해 터질 지경이였다. 격동된 나머지 얼굴이 더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5%로 커미션만 받아도 한평생 먹고 쓸 돈이 나온다. 떵떵거리며 살 날이 멀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허락할 때 저의 회사에 한번 다녀오시기를 바랍니다.”

“네, 알겠습니다. 꼭 다녀오겠습니다.”

“오늘이 9월 10일이니까, 두달 후인 11월 10일에 오셨으면 어떨가 합니다.”

“좋습니다.”

“오실 때 미리 련락주시기 바랍니다. 왕복 티켓을 포함해 모든 비용을 대주는 외에도 하루 3000원씩 출장 보조금을 지불해드리겠어요.”

말을 마친 초선이가 일어섰다.

“아니, 어데로 가시려고 그럽니까?”

안과장이 날아가는 풍선을 잡으려는 듯 초선을 따라 일어났다.

“네, 상해로 이동해야 하니까요. 상해에 가서 한분 만나봐야 합니다. 한개 성시에 한두명씩 특파원으로 두려고요.”

초선이가 단아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초선이 일어나는 것을 지켰보았다는 듯이 보디가드가 바람처럼 다가왔다. 

“리사장님, 받으십시오.”

보디가드는 미리 준비해두었던 정교한 선물을 꺼내 초선에게 넘겨주었다. 물건을 받은 초선은 안과장 앞에 내밀었다. 

“마음에 들겠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희 회사에서 남자 손님들에게 첫인사로 올리는 선물입니다.”

“아니, 이리 귀한 것을… ”

안과장이 선물함을 받으며 황송스레 말했다.

“그리고 등기표도 갖고 왔으니까 집에 가서 친필로 등록한 후 원본은 우편으로 보내시고 전자파일은 메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첫인상이 좋으니까 좋은 결과가 따라오리라고 생각합니다.”

초선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마쳤다.

“네,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안과장은 준비해온 차를 꺼내 초선에게 주었다.

“이건 저의 지방에서 나오는 아주 유명한 차입니다. 많지 않지만 받아주십시오.”

포장에서나 가격에서나 초선의 선물에 비해 많이 초라함을 느낀 안과장은 연신 고개를 숙여 감사하다는 말만 하였다.

“고맙게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초선은 미소를 지으며 차를 선뜻이 받은 후 기둥처럼 서있는 보디가드에게 넘겨주었다.

“오늘 만남 너무 좋았습니다. 인상도 깊구요. 시간이 바빠서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아, 아니, 식사라도…”

안과장이 황송스레 손바닥을 싹싹 비볐다.

“아니요. 다음번에 봅시다.”

녀인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한후 발걸음을 옮겼다. 보디가드 두 사람이 녀인의 주위에 그 누구도 접근 못하게 하려는 듯이 량켠에 바짝 붙어섰다. 안과장은 경호원의 빈틈없는 경호에 기가 질려 차마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고 몇발자국 뒤에서 따라나섰다.

“칙!”

최고급 벤츠 승용차 한대가 녀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스르륵 달려와 멈춰섰다. 새로 뽑은 듯이 반질반질 윤기나는 방탄차였다.

보디가드 한 사람이 차 앞뒤좌우를 살피고 다른 한 사람이 승용차 뒤문을 열자 녀인의 몸은 인츰 차 속에 사라져버렸다.

대기 중이던 똑같이 생긴 벤츠 승용차가 앞에서 움직였다. 보나마나 길 안내를 나선 차였다. 안과장이 넋을 잃은 동안 녀인이 앉은 차는 앞의 차를 따라 쌩- 하고 빠져나갔다. 그 뒤로 또 한대의 벤츠 승용차가 하얀 연기를 뿜으며 사라졌다. 

보안 때문인지 초선은 유리창도 내리지 않고 작별인사도 없이 떠나갔다. 영화에서나 볼 듯한 장면이였다. 

안과장은 넋 나간 듯 호텔 앞에서 손저어 바랬다. 혹시나 꿈인지 몰라 머리를 흔들고 호주머니를 들춰보니 정교하게 만든 명함장이 나왔다. 꿈이 아니였다.

인터넷에 올라 검색해보니 홍콩에서 상당한 인지도를 갖고 있는 투자회사였다. 말 그대로 중국지사는 없었다. 중국지사를 설립 중이라는 초선의 말이 맞았다.

초선이가 주고 간 선물을 헤쳐보니 황금빛으로 정교하게 제작된 보건품이였다. 터질 것처럼 부풀어진 남자의 성기와 그것을 보고 흥분돼있는 라체의 녀자 사진을 적라라하게 박아넣은 정력제였다. 보나마나 좋은 정력제가 틀림없었다. 

안과장은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수많은 녀자들의 이름이 떴다. 누구를 부를가고 고민하다가 안과장은 가려에게 전화를 넣었다. 끝까지 소리를 질러대던 가려를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였다. 몇번 헐떡이다가 떨어졌던 기억이 생생했던지라 안과장은 오늘은 기절시켜야 되겠다고 다짐하였다.


49

동방편직의 문수는 요즘 참으로 부산했다. 지난번 민혁이와 장보네 패거리가 달려들었을 때만 해도 여유만만했는데 요며칠 사이에는 경찰복을 입은 경찰들이 들이닥치고 소방대에서도 얼핏하면 내려와서 이것저것 탈을 잡았다. 정상적인 검사라고는 하지만 인위적인 부분이 많았다.  문수는 이 모든 것이 건설은행 안과장의 조작이라고 생각하였다. 예전에 자기에게 은행 대부금을 내준 것도 안과장이였고 이번에 자기에게 주회장의 돈을 빌려쓰라고 권장한 것도 안과장이다.  

“은행대출이 인츰 나올 거니까 한두달만 돌려 쓰면 될 겁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였다. 

평소에 관계가 좋았던 거래업체에서 소송을 걸어왔고 동방편직은 소송이 끊이지 않는 회사로 되였다. 자연스레 은행에서는 대부금 내주기를 거부하였고 안과장은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했다.

경찰들이 들락거리고 경찰차가 하루 건너 멈춰서있자 동방편직의 분위기는 가라앉기 시작하였고 바이어들도 왔다가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형님, 안과장이 저렇게 변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정호가 생각에 잠겨 담배를 피우는 문수에게 말했다.

“나는 하늘이 무너져도 안과장에게는 이 땅을 내주지 않을 거야. 주회장보다 더 간교한 놈이야. 더 간악한, 아주 간악한 놈!”

문수가 입을 앙다물었다.

문수와 그림자처럼 붙어다녔던 정호도 공감이였다.

“똑똑똑!”

노크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십시오”

정호가 문을 열자 낯익은 얼굴이 들어섰다. 태평양실업 왕도 회장의 조변호사였다. 평소에 자주 얼굴을 보았던 사람인지라 반겨 인사했다.

“아니, 조변호사님이 어떻게…”

“지나가다가 들렸습니다. 차나 한잔 마시려고…”

조변호사도 아주 편한 모습으로 문수의 인사를 받아넘겼다.

“무슨 일이 있어 오신 것 같은데…”

차를 올리면서 문수가 물었다.

“하긴…”

조변호사가 주변에 낯선 사람이 있는 것이 걱정되였는지 정호를 흘깃 보았다. 

“괜찮아요. 동고동락하는 형제니까요 시름놓고 말씀하십시오.”

조변호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두분도 바쁘시겠는데 긴 말 안하고 용건만 전달할게요.”

조변호사가 고개를 앞으로 숙이며 입을 열었다.

“오늘 저는 사실 왕도 회장의 위탁을 받고 왔습니다.”

“네? 왕도 회장의?”

조변호사의 말에 김문수는 일순간 멍졌다.

“네. 그렇습니다. 동방편직의 현상황을 저희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김사장님의 인간 됨됨이에 대해서도 저희 왕도 회장은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조변호사는 차물을 한잔 가볍게 마시고 말을 이었다.

“아시다싶이 주회장과 왕도 회장은 라이벌 관계였습니다. 라이벌이라고 해서 원수지간도 아니고 사업상의 라이벌이였지요. 주회장과 왕도 회장이 다른 점은 단 한가지. 사채업에 있습니다. 말하자면 주회장은 사채를 풀었지만 왕도 회장은 사채를 풀지 않았습니다.”

“지난번에 왔던 장보가 왕도 회장의 밑에서 사채를 푼다고 들었는데…”

문수가 의아한 눈길로 조변호사를 바라보았다.

“사촌형제간일 뿐입니다. 물론 왕도 회장의 덕을 많이 보았겠지요. 그러나 내가 장담하건대 왕도 회장은 장보에게 고리대를 풀라고 단 한푼도 대주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잘 압니다. 그는 사채를 풀어 부자가 되는 것을 가장 혐오하던 분입니다.”

“오.”

정호와 문수로서는 처음 듣는 말이였지만 수긍이 갔다. 부동산개발을 하면서 왕도가 원주민들을 괴롭혔다는 소문을 들은 적은 없었기 때문이였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목적은 바로 훌륭한 분들은 서로 만나서 좋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좋은 일이라면?”

문수가 말꼬리를 물었다.

“주회장을 막후 조정했던 사람이 누구인지를 우리는 알고 있고 지금 김사장님의 목을 조이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조변호사가 말을 잠간 끊고 문수의 얼굴 표정을 지켜보았다.

“저희들은 나쁜 사람 손에 동방편직을 넘길 수 없다는 판단입니다. 말하자면 주군처럼 모시던 주회장이 죽자 주회장의 마누라에게서마저 단즙을 빼먹으려고 드는 사람에게 노른자위를 줄 수 없다는 말이지요.”

조변호사의 얘기가 끝나자 문수는 저도 모르게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는 한입 길게 삼켰다가 뿜어냈다.

“안과장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조변호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건은?”

문수가 조변호사를 보며 물었다.

“파격적입니다. 당신의 빚 300만원을 태평양실업에서 다 갚아주는 외에 당신의 공장부지를 시가보다 더 높게 값을 쳐서 태평양실업의 지분을 줄 것입니다.”

조변호사의 제의는 단번에 수락하고 싶을 만큼 유혹적인 것이였다.

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문수의 표정을 읽어보던 조변호사가 미소를 지었다.

“좋은 인연일 것 같은데 저녁에 소주나 한잔 합시다. 왕도 회장이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네? 전, 아무런 준비도 없는데 옷도 못 갈아입고.”

문수가 난색을 지었다.

“사람이 좋아서 만나는 겁니다. 일은 두번째이고요. 우리 왕도 회장도 형식을 싫어하는 분입니다. 만나보면 알 것입니다.”

왕도라는 실세와의 만남이 나쁠 건 없었다. 왕도는 빈주먹으로 일어섰다는 신화 같은 존재이기도 하고 정부는 물론 깡패사회에서도 인정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문수와 정호는 조변호사의 차에 앉아 약속지점으로 떠났다.


50

비행장에서 동쪽으로 10리 가면 외관은 수수하나 아담한 분위기가 일품인 농가원이 있다. 두 사람이 들락거릴 만큼 좁은 문을 지나면 이화원을 축소해 만든 듯한 늪이며 화단들이 앙증맞게 자리잡았다. 굽이굽이 뻗어간 인공호수를 따라 걸어가면 운동장 만큼 넓다란 로천에 몇메터씩 사이두고 통나무로 지은 단칸방이 있다.  

농가원 맨 끝머리에 자리잡은 널직한 독채에는 건설은행 안과장이 한상 거하게 차려놓고 공안국의 실세인 마초 대대장을 비롯한 법원, 검찰 그리고 소방대의 친구들을 초청했다.

물론 안과장은 가려를 곁에 앉혔다.

“나의 친구들이니까 걱정 말고 마십시다.”

엊저녁부터 가려와 함께 축제의 밤을 보낸 안과장이였다. 토끼로부터 변강쇠로 변한 안과장에게서 가려는 평생 맛보지 못했던 섹스맛을 느꼈다. 이제 한번만 그렇게 더 해주면 가려는 아마 색골이 될 것 같았다.

초선이가 준 그 신비의 정력제는 어찌나 효력이 좋은지 엊저녁에 먹은 것이 오늘까지도 효력이 있는 것 같았다. 가령 오늘 저녁에 초대연을 펼치지 않았다면 안과장은 대낮부터 가려를 안고 떡방아를 찧었을 수도 있다.  

“자, 자, 오늘 제가 여러분들을 부른 건 다름 아니라 좋은 일들이 련속 생기고 있기에 그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입니다. 여러분, 박수 한번 보내주시죠.”

안과장은 활짝 핀 얼굴로 장내를 둘러보며 선코를 뗐다.

좌석에 앉은 일행이 박수를 쳤다.

“이제 저 안광의 인생은 획기적인 변화를 맞게 될 것입니다. 여러 형제들의 덕분에 좋은 일이 줄줄이 생기고 있는데 저는 이제 홍콩 국제투자회사의 직원으로 청도시장을 담당하게 됩니다.”

“청도시장을 담당한다면 청도 대표라는 말이네.”

형사경찰대대장 마초가 맞장구쳤다.

“그렇습니다.”

“그럼 조동하는 건가? 아니면?”

“겸직으로 합니다.”

“겸직으로? 로임은 2중으로 타고?”

“아니, 커미션을 받기로 하였습니다.”

“커미션을?”

“네, 매 한건의 투자액 중에서 5%를 커미션으로 받게 됩니다.”

“와!”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5%의 개념을 너무나도 잘 아는 이들은 안과장의 인생에 황금무지개가 비꼈다고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

“이번에 동방편직의 일을 함께 마무리한 다음 저는 이 자리에 계시는 여러분들에게 좋은 기회를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돈은 제가 댈 것이지만 투자항목은 여러분들이 찾으십시오. 가령 성사되면 저는 투자액의 3%를 커미션으로 주겠습니다. 2%는 물론 제가 먹고…”

억대 단위를 기본으로 투자하는 시국에 3%를 커미션으로 먹으면 대박이다. 장내는 금시 뜨거워졌다.

“안과장, 걱정 말라고. 공안에 관계되는 일은 내가 백프로 다 해결해줄 거니까 동방편직의 그 친구도 땅을 내놓지 않고는 못 배길걸. 하루 건너 내가 사람을 보내서 치안상황을 검사하게 할 테니까.”

마초가 먼저 말했다.

“서류는 내가 요구했던 대로만 해두오. 그럼 내 손에 올라온 다음 알아서 하지 않으리라고…”

검찰원의 장씨가 덩달아 표시했다.

“나머지는 나에게 맡기라고. ㅎㅎㅎ”

법원의 오정장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공안과 검찰원에서 서류를 잘해 보내주면야 완벽하게 해버릴 수 있지. ㅎㅎㅎ”

소방대의 부대장이 마무리했다.

“국가의 소방표준 대로 검사하면 통과할 기업은 몇개 없습니다. 저는 이제 국가의 소방표준 대로 동방편직을 검사할 것입니다. 그렇게만 되면야 결과는 뻔할 게 아니겠습니까?”

술을 마시기도 전에 태도표시가 끝났다. 리익공동체인 것 만큼 이들의 태도표시는 곧 행동이였다. 여지껏 이들이 움직여서 실패한 적이 없다. 공권력을 리용한 이들의 수단은 교묘했고 지정된 사냥감은 비참한 운명을 맞았다.

“오늘 기분이 좋구만. 년말도 멀지 않는데 슬슬 분위기를 띄워보지뭐.”

안과장이 자그마한 맥주잔을 들었다. 그는 맥주잔에 고량주를 반 쯤 부은 다음 말했다. 

“저는 누구든 건배하면 한잔에 천원씩 주겠습니다. 물론 한잔도 건배 못하면 천원 벌금해야겠지요.”

가려가 천원씩 묶은 돈묶음을 꺼내놓았다. 얼핏 보아도 10만원은 될 것 같았다.

“돈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맘껏 드시기 바랍니다.”

가려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 올리면서 말했다.

“미녀가 술을 권하는데 안 마시면 안되지.”

마초가 굽을 냈다.

“자, 이건 마대장님의 돈입니다.”

마초가 굽내자 가려는 마초의 호주머니에 천원을 넣어주었다.

“하하하, 이거 오늘 술 먹고 돈 먹고 기분 좋네.”

마초가 팔을 겯고 나섰다.

“자, 자, 우리의 안과장 형제가 이번에 대운이 튼 것 같은데 우리 다 함께 위하여를 웨치는 것이 어떻소?”

“좋소!”

돈 앞에서 술자리는 용광로처럼 끓어올랐다. 술은 구실이고 돈을 주기 위해 안과장이 이벤트를 벌이고 있음을 다 아는지라 이들은 기분 좋게 한잔 또 한잔 술을 마셨다. 한묶음 또 한묶음의 돈이 이들의 호주머니에 들어갔다.


51

정양로에 자리잡은 빠장군 샤브샤브집에는 왕도 회장과 조변호사 그리고 문수와 정호 네사람이 하얀 김이 피여오르는 샤브샤브를 놓고 마주앉았다. 구석진 곳에 자리잡은 이곳은 VIP석으로서 오가는 사람들이 적고 쉽게 눈에 뜨이지 않는다. 왕도 회장이 국자를 들고 가마에 한벌 깔린 고추기름을 적당히 떠냈다.

기름 밑에는 뽀오얀 국물이 펄펄 끓고 있고 고기와 야채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고 있었다. 왕도는 의미심장은 눈길로 국물을 들여다보며 말머리를 열었다.

“저는 샤브샤브 문화를 좋아합니다. 뜨겁지만 뜨거운 것을 감추고 있고 갈라져있지만 함께 끓고 있고 여러가지가 한데 어울려 아름다운 맛을 내는 샤브샤브 문화는 어찌 보면 내가 지향하는 기업문화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에게 비하면 재벌이라고도 할 수 있는 왕도가 이렇듯 털털하고 소박한 면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조변호사에게서 다 들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당신과 손 잡자고 하는 리유는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동방편직의 부지가 안과장이라는 사람 손에 넘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고 다른 한가지는 당신의 능력을 살리고 싶습니다. 저에게는 자금이 있지만 당신에게는 한국이라는 시장이 있습니다. 저는 당신을 통해 그들의 기술을 인입하여 새로운 경제성장점을 만들고 싶습니다.”

문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왕도를 바라보았다. 왕도는 진솔하고 순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회장의 간교하고 탐욕에 불타던 눈빛이 아니였다.

“여지껏 당신과 비록 아무런 관계도 없이 보내왔지만 이제부터 인연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주회장이 김문수를 은은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왕회장님.”

김문수가 고개를 숙였다.

“남자 대 남자로 만난 이상 결과와는 상관없이 당신을 한번 돕고 싶습니다.”

“네?”

“래일이면 주회장 마누라의 계좌에 당신이 주회장에게서 꾸었던 돈이 입금될 것입니다. 물론 리자까지 쳐서 말입니다.”

“아니, 어떻게…”

문수는 왕도의 뜻밖의 말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정호도 놀란 듯 눈만 휘등그레 떴다.

“저는 차용증도 필요 없습니다.”

그릇의 크기가 달랐다. 통이 크고 수단이 좋다던 왕도에 대한 평판이 거짓이 아니였다. 

문수는 두손을 맞잡고 일어섰다. 정호도 따라 일어섰다.

“남자 대 남자로 생각해준 왕회장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왕회장과의 합작을 기대하겠습니다.”

문수의 말에 왕도도 일어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긴 만남은 아니였지만 저는 제가 혼자서 하기보다는 왕회장과 함께 하면 더욱 커지리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였습니다.”

“좋아요. 좋습니다.”

왕도가 손을 내밀었다. 문수도 손을 내밀어 왕도의 손을 잡았다.

“저는 지식이 없습니다. 주먹구구로 기업을 키워왔지요. 나에게는 지식있는 동업자가 필요합니다.”

왕도가 술잔을 들었다. 

“예전의 나는 공권력에 아부하며 공권력을 빌어 커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진정한 자기를 찾기 위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뜻이 맞는 기업인과 손잡고 기업을 키워보고 싶습니다.”

왕도의 가슴속에서 우러러 나온 말에 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꿈과 야망을 갖고 있는 두 열혈사나이는 술 한방울도 남기지 않고 건배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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