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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강일 추리소설] 도시는 알고 있다(16)

조글로 潮歌网 2020-09-15

 조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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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단 신선한 활력소! 추리소설 작가 허강일!

극작가, 시인, 기자로서의 허강일이 펼쳐보이는 숨막히는 드라마!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한치 앞도 내다 볼수 없는 운명의 대결! 지금 펼쳐집니다.


 화목련재


 허강일  장편추리소설 

도시는 알고 있다


61

안과장의 석연찮은 죽음은 수많은 추측과 낭설을 몰아왔다. 안과장과 죽기 하루 전에 통화하였거나 안과장이 통화를 시도하였던 사람들은 모두 수사물망에 올랐다. 특히 경상적으로 통화하던 사람들은 더구나 그랬다.

낯모를 사나이에게 얻어맞고 휴대폰을 끄고 잠수했던 민혁이도 얼굴을 나타냈다. 평소 아무런 관계도 없던 사람들도 하루 이틀 전에 안과장과 전화 통화를 했다는 리유로 불리워가는 판국에 민혁이도 나타나지 않을 수 없었다. 나타나지 않을 경우 의혹의 실타래는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기 때문이였다.

민혁의 몰골은 피해 당시의 흔적을 보고도 남음이 있었다. 쇄골이 끊어져 하얀 붕대로 어깨를 고정했고 채 아물지 않는 입술은 벌릴 때마다 갈라터져 여간만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였다.

“누구에게 얻어맞았습니까?”

젊은 경찰 동만이가 물었다. 민혁이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기껏 맞고도 누구에게 맞은 것도 모르기는 처음이다.

“이정도 맞았으면 신고할 수도 있었을 건데 왜 신고도 안하고 잠수했지요?”

경찰의 물음이 이어졌다. 민혁이는 차마 말을 잊지 못했다. 필경 떳떳하지 못한 일에 참여했고 가짜 차용증을 들고 사람을 위협했으며 고리대를 제때에 갚지 못한 사람들을 괴롭힐 대로 괴롭힌 자신이였기 때문이다.

“300만원 차용증 때문이였습니까?”

경찰의 집요한 질문에 민혁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민혁이는 아주 성근한 자세로 수사를 받았고 대부분 인정했다. 인정해봤자 죄가 될 건 하나도 없었다. 차용증을 위조했다거나 등 관건적인 건 모두 죽은 안과장에게 떠밀었고 자신은 푼돈이라도 얻어먹기 위해 사냥개처럼 뛰기만 했다고 하였다.

동만은 고개를 끄덕이며 민혁이를 돌려 보냈다. 매번 문수가 관건적인 고비에 처했을 때 홍길동처럼 나타났다는 ‘협객’과의 관계를 확인하고저 조사를 하였을 뿐이였다.


고파가 입원한 즉시로 왕뢰와 강호는 병원에 직접 찾아가 모든 대가를 아끼지 말고 최상의 의료진과 최고의 약물을 투입하라고 지시하였다. 공안국의 제1국장까지 나서서 살려내야 한다는 명령을 내리자 병원에서는 최선을 다해 고파를 치료하였다. 

다행히 고파는 회복이 빨랐다. 고파를 한방에 쓰러 눕힐 만한 타격이면 엄청난 것이였지만 특수훈련을 받았던 고파는 이겨냈다. 특히 그제날의 ‘3총사’였던 왕뢰까지 만난 고파의 신체는 하루가 다르게 회복되였다.

고파가 의식을 회복하고 말할 수 있게 되자 왕뢰와 강호는 하루가 멀다 하게 병원에 찾아왔다. 경찰들이 병실을 지키기에 누가 보아도 혐의범 병실이였지만 병실 안에서는 항상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고파, 이건 나와 강호가 당신에게 주는 선물이야. 지난 10년 동안 당신과 같이 마시지 못했던 술값을 당신에게 주는 것인데 사먹고 싶은 걸 사먹으며 몸조리 잘하라고.”

왕뢰가 고파의 손에 은행카드를 쥐여주며 말했다.

“아니, 이건?”

고파가 게면쩍게 웃으며 사양했다.

“받아. 그리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들에게 분부하라고. 맛있는 것을 맘껏 사먹는 것도 잊지 말고…”

왕뢰의 말에 고파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을 마무리 한 다음에는 당신이 자리를 한번 안배하라고. 당신이 불러준다면 나와 왕뢰는 무조건 달려갈 거니까…”

강호의 말에 고파는 고개를 끄덕였다.

왕뢰와 강호는 문어구를 지키는 경찰들에게게 고파를 잘 보살피라는 말을 남긴 후 병원을 나섰다.

“친구가 할 수 있는 일이 다른 게 뭐 있겠는가? 내 생각엔 고파의 건강이 회복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건의 자초지종을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소.”

병문안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 왕뢰가 강호에게 말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고파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어 심문 받을 준비를 하게 하려는 왕뢰의 의도를 강호는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튿날 아침, 출근하여 자료를 검토중인데 병원에서 당직을 서던 경찰에게서 전화가 왔다.

“부국장동지, 고, 고파가 사라졌습니다.”

다급한 나머지 젊은 경찰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 고파가 사라졌다고?”

강호는 왕뢰 국장에게 사실 정황을 회보한 후 총알같이 병원으로 달려갔다. 고파의 병상은 텅 비여있었다. 

화장실 문을 열어보니 화장실 창문이 열려있었다. 밖을 내다 보니 창문 옆에 하수도관이 벽에 붙어 있었다. 4층에서 뛰여내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분명 하수도관을 타고 달아난 것이였다. 그냥 떠나갈 사람이 아님을 잘 아는 강호는 침대를 들췄다.

고파가 누웠던 침대 밑에 쪽지 한장이 나왔다.


왕뢰와 강호에게:

작별인사를 못하고 떠나감을 용서하게.

도시관리 집법일군 폭행사건에 말려들어 공안계통에서 나온 다음 난 야인으로 살았네. 그러나 법을 위반하고 량심을 위배하는 일은 티끌 만치도 하지 않았네. 여기에 와서 몇사람을 때린 적 있지만 모두 내 량심을 법으로 삼고 때렸을 뿐이네. 나에게 피터지게 얻어맞고도 누구 하나 신고하는 사람을 못 봤지 않는가? 맞을 짓을 한 사람들을 족쳤을 뿐이네.

법 밖에서 법을 보니 허점이 많구만. 나를 필요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이번 일도 문수라는 사람의 운명이 하도 안타까워 어떤 할머니의 부탁을 받고 나섰다네. 물론 그 할머니도 자기도 하도 딱해 나를 찾아왔다더구만. 나는 그 할머니가 누군지도 모른다네. 그저 나처럼 고아로 살아온 사람이 있는 자들에 의해 무너지게 된 것이 안타까워 나섰을 뿐이네.

왕뢰, 강호:

절대 부담을 끼치지 않겠네. 가령 누군가 나를 신고했다면 위챗에 띄워주게. 그러면 나는 당장에서 달려오겠네.

‘3총사’가 재회했다는 것이 얼마나 감격스럽고 기쁜 일인지, 정말 산 보람을 했네. 평생 잊지 않겠네.

고맙네.

그리고 절대 ‘3총사’ 이름을 더럽히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니까 그리 믿어달라고.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지어 있기에 먼저 가봐야겠네. 당신들 둘의 성의는 고맙게 받고 가겠네.

건투를 바라네.

-영원한 ‘3총사’ 고파로부터


고파의 편지를 읽어보고 난 강호는 인츰 왕뢰 국장에게 달려갔다. 편지를 읽어본 왕뢰 국장은 편지를 접어 호주머니에 넣었다.

“고파는 우리가 붙들어 조사할 리유도 없는 사람이야. 그의 말 대로 그에게 얻어맞고 폭행죄로 신고한 사람 하나도 없어. 오히려 감사해야겠지. 가령 이번에도 고파가 나서지 않았더면 문수와 정호는 또 다시 랍치되였을 것이 아니겠는가? 자칫하면 인명사고도 날 수 있었고…”

강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가령 또 다시 랍치사건이 발생했더면 민심은 더욱 황황해질 것이고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강호는 고파에게 은행카드를 선물하자던 왕뢰 국장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3총사’는 영원한 ‘3총사’였다.


62

강호는 고파의 편지를 되새겨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고파는 몇사람을 때렸다고 했다. 그는 단순히 문수를 도와주기 위해 때렸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는 또 누구를 때렸고 살인사건과 고파는 무슨 관계가 있을가? 고파를 내세운 최종 목적은 무엇이며 누가 고파를 내세웠을가?

강호는 숨을 가다듬고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구멍이 없는 쥐굴이 없다.

“혹시?”

불현듯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강호는 전화를 걸어 당장 달려오라고 하였다. 10분도 되기 전에 강표가 달려왔다.

“무, 무슨 중요한 일이 있습니까?”

강표가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중요한 일은 없어. 네가 중요한 일을 말하지 않는데 나에게 어떻게 중요한 일이 있겠니?”

“네?”

강표의 두눈이 데꾼해졌다.

“난 너를 믿는다만 넌 아직도 나를 속이고 있어.”

강호가 창밖을 내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속, 속이다니요?”

강표가 떠벅떠벅 거렸다.

“넌 얻어맞았던 기억은 까먹고 사니?”

“네?”

강표의 호흡이 멎었다.

“나는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 다 해주려고 했건만 너는 그냥 속을 털지 않았어. 너에게 리로운 말만 전해왔어…”

강호가 너무나도 한심하다는 듯이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죄송합니다.”

강표가 고개를 숙였다. 강호가 젊은 경찰 동만이를 불렀다. 속기하기 위해서였다.

“기록하는 것 일 뿐이다. 널 잘못 되게 하려는 의도는 없다. 시름놓고 말해라.”

강호가 강표에게 말했다. 강표가 차분한 어조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사실, 장보가 정호를 랍치한 날 저도 같이 있었댔습니다.”

“정호라면? 문수와 같이 사업하는 사람을 말하겠지?”

“네.”

강표가 말을 이었다.

“아시다싶이 저는 깡패도 아니고 싸움군도 아닙니다. 그냥 정보나 흘리고 다니면서 밥을 먹는 사람인데 랍치현장에서 랍치범과 함께 있을 리유가 없지 않습니까? ”

“그래서?”

“그때 장보가 정호에게 억지로 차용증을 새롭게 쓰게 하려고 했지요. 5만원짜리를 20만원으로… 사채업자들의 본성이 아닙니까?”

강표가 말을 끊었다. 그는 잠시 숨을 돌린 후 말을 이어갔다.

“그날 저는 덤터기를 쓸가봐 무서워서 밖에 나와 화장실에 숨었습니다. 그러다가 얄팍한 사람이 방문을 노크하는 걸 보았지요. 그다음 싸움판이 붙고 비명소리가 들리고… 저는 겁이 나서 들어갈 념두도 못 냈습니다. 그러는데 한참 후 그 사람과 정호가 나오더군요.”

“그래서?”

강호가 숨돌릴 틈도 주지 않고 물었다.

“제 본성이 워낙 남을 미행 잘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돈이 될 것 같아서 인츰 가까이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내려간 후 그 두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아니나 다를가 두 사람은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이 나가더구만요. 그래서 저는 그들의 뒤를 따랐지요.”

강표가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강호가 눈짓하자 젊은 경찰이 랭장고에서 시원한 약수물을 꺼내 강표에게 따주었다. 목이 몹시 말랐던지 강표는 단숨에 한병을 다 마셔버렸다.

“그래서?”

강호가 재촉하였다.

“석복진 사거리를 지나 북쪽으로 가면 몇해 동안 개발 못하고 방치해둔 곳이 있습니다. 그 사나이는 정호를 그곳에 데려갔습니다.”

강표가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그곳까지 가면 더 갈 데가 없는 것을 잘 아는 저는 그 사나이가 정호를 피신시켜주기 위해 이곳까지 왔다고 생각하였거든요. ”

강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저는 그날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됩니다.”

강표가 침을 꼴깍 삼켰다.

“정호를 숨겨둔 곳에서 저는 김문수를 발견하였습니다.”

“뭐라? 그 사나이가 정호를 데려간 곳이 문수가 숨어있는 곳이였단 말이니?”

강호가 되물었다.

“네.”

강표가 말을 이었다.

“저로서는 대어를 낚았지요. 저는 문수가 숨어있는 집 번지를 알아낸 후 골목에서 돌아서 나왔습니다. 조용한 곳을 찾아 장보 형님에게 전화를 하려는데 불시로 그 사나이가 저의 앞에 나타났습니다.”

불보듯 뻔했다. 얻어맞고 터지고 심하면 부러졌을 것이다.

“살아서 처음 그런 매를 맞아봤습니다. 갈비뼈까지 부러져 일주일 동안 누워있었댔습니다.”

강표가 아직도 그날의 공포를 가시지 못한 듯 고개를 흔들었다.

“민혁이네 집 위치도 네가 알려줬지?”

강표가 생각을 굴릴 사이도 없이 강호가 바늘처럼 찍어 물었다. 강표는 고개를 숙였다. 천라지망이 무엇인지를 알 것 같았다. 

“그 사나이에게 정보는 제공하였습니다만 국장님과의 대화 같은 건 절대 발설한 적 없습니다. 그 사나이와 밥 한끼 먹은 적도 없구요. 그리고 그 사람은 저에게 다른 정황을 물어본 적 없습니다. 매번 한가지 용건만 물어보고 끝났으니까 꼭 마치 숙제를 완성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강표가  정색해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강호는 강표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강호는 호주머니에서 스캔하여 뽑아낸 고파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 사람 옳지?”

강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혹시 련락 오면 한밤중이라도 좋으니까 인츰 련락해라.”

“네. 알겠습니다.”

강표가 고개를 숙이며 나갔다. 강표가 쑥스럽게 나가는 것을 보던 동만이가 강호에게 물었다.

“저애가 문제있다는 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사람은 흔히 생존을 위해 량다리 치기를 하게 되지. 때론 알 게 모르 게 말이다… 정보력이 뛰여난 저애가 우리 일만 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나는 하늘에 송곳질했다. 저애가 그렇게 했을 거라고 확신하고 건너 짚기를 했더니 먹혔구나.”

“와!”

동만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경찰 앞에서 경찰이 모르는 과거를 털어놓을 사람은 없어. 나쁜 일을 많이 했던 사람은 특히 더 그렇지, 죄가 늘어날 수 있으니까…”

강호는 말을 마치고 환한 웃음을 지었다. 낯선 사나이, 아니, 그의 대학동기이자 ‘3총사’로 소문 놓았던 고파는 바로 문수와 정호를 지켜주기 위해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를 사주한 사람이 바로 살인범이다. 강호는 주먹을 불끈 쥐였다. 


63

미나가 ‘인연’ 커피숍에 나타난 것은 약속시간 5분 전이였다. 안과장과의 불륜이 한이 맺히도록 후회되였으나 이미 엎지른 물이였다. 비록 공안국 부국장 강호가 비밀을 지켜준다고 약속했지만 말이라는  건 틈새만 있으면 새여나가게 돼있다. 강호 부국장도 자기와 안과장이 불륜관계임을 처음부터 알았을 리 없었을 것이고 꼭 누군가에게서 들었을 것이다. 불륜의 시작은 달콤하지만 끝은 쓰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었다.

좋아서 시작한 건 아니다. 남편이 출장 간 날, 안과장과 단둘이 앉은 게 화근의 시작이였다.

수면제를 탄 콜라를 마셨고 몽롱한 상태에서 안과장과 잠자리를 같이 했다. 강간했다고 신고하겠다고 야단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안과장이 갖고 있는 힘은 그에게 너무나 필요한 것이였다. 어차피 돈에 팔려 주회장의 마누라로 되였고 애까지 낳았다. 자기보다 나이가 더 많은 주회장의 재산을 모두 손에 넣으려면 주회장의 재산관리를 해주는 안과장의 손이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미나는 어느 사이에 안과장의 정부로 되였고 끌려다녔다. 

첫사랑 진성이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미나에게는 돈이 전부였다. 돈을 많이 챙기기 위해서는 모든 수모를 겪어낼 자신도 있었다. 그러나 첫사랑 진성이를 만난 다음부터는 그의 마음이 달라졌다. 비록 남의 자식까지 낳은 불미스런 몸이지만 단 한순간을 살아도 진성이와 깨끗한 사랑을 하다가 죽고 싶어졌다. 그는 안과장이라는 존재 때문에 진성의 가슴에 못을 박고 싶지 않았다. 

“자, 어서 앉으시지요.”

미나가 착잡한 마음으로 상념에 잠겨 다가가자 먼저 온 강호가 일어섰다.

“네, 감사해요.”

미나는 고개를 약간 숙여 인사를 한 후 강호의 맞은켠에 앉았다.

“죽은 두 사람, 주회장님과 안과장이 동일한 공통점이 있어 찾았습니다. 말하자면 미나씨와 다 관계있다는 것이지요.”

강호가 말을 끊었다. 미나의 얼굴이 파랗게 질리기 시작하였다. 강호가 말을 이었다.

“제가 오늘 나오라고한 것은 그 관계를 정리하거나 캐어묻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인을 저지른 사람을 잡기 위해서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강호의 말에 미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인 주회장에 대해서 좀 알고 싶습니다. 그의 과거를 말입니다.”

“어데서부터 말해야 할지…”

“아는 것 만큼 말씀해주십시오. 잘했던 업적 같은 건 말고 어떤 목적과 리익을 위해 륜리와 도덕을 어긋난 행동을 했다거나 아니면 남의 가슴에 평생 한이 될 일을 했다거나 이런 일들을 알려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강호의 말에 미나는 난감해졌다. 사실 남편 주회장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나도 없었다. 고리대를 푼다는 얘기 정도만 알고 있었다.

“부끄럽지만 저는 정말 잘 모릅니다. 학교를 중퇴하고 결혼한 후 인츰 고향을 떠나왔으니까요. 그리고 저와 그분은 한 고향이 아니라서… 그저 돈이 많다는 것과 고리대를 푼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습니다.”

강호는 말없이 미나의 얼굴을 건너다보았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남편에게 형제가 몇이나 있습니까?”

“넷이라고 들었어요.”

“넷?”

“네.”

미나의 어조는 담담했다. 꼭 마치 남의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아니, 남편의 형제가 몇인지도 모릅니까?”

“한번도 만난 적이 없으니까요.”

미나의 얼굴에 쓸쓸한 표정이 흘렀다. 시집 와서 여지껏 그는 시집 형제들을 만나본 적 없었다. 그 누구도 그의 집을 찾지 않았고 그들도 다니지 않았다. 심지어 남편이 죽은 다음에도 문안 전화 한통 걸려오지 않았다.

강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리대를 놓을 만큼 랭혹한 사람들의 가슴은 흔히 랭랭한 얼음과 같다. 인간미를 상실한 돈벌레를 좋아할 사람은 없다. 특별히 누구를 괄시하고저 그러는 게 아니라 몸에 배인 습관 때문에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그의 주변 사람들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결혼 할 때 집안에서는 반대한 사람은 없었습니까? ”

강호가 물었다.

“고리대에 얽혀있다 보니 속으로는 반대하면서도 겉으로는 다 좋다고 하였습니다. 오직 둘째 외삼촌만이 결사적으로 반대하였습니다.”

미나가 잠간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둘째 외삼촌?”

“네. 둘째 외삼촌은 저의 신랑을 밤중에 찾아가 칼로 찍어죽이겠다고까지 하였습니다. 내가 울고 불며 말려서야 겨우 달랠 수 있었습니다.”

“오, 삼촌은 왜 반대하였지요?”

강호가 물었다.

“삼촌과 저의 남편은 나이가 비슷해요. 비록 한마을에서 살지는 않았지만 예전에 자주 만나고 그랬대요. 그래서 하는 말이, 사람 같지 않는 사람에게 너를 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아마도 나쁜 일을 많이 했나봐요.”

미나는 머리가 아픈 듯 팔을 탁자에 고인 채 상심스레 눈을 감았다.

“그럼 삼촌은 지금 생전입니까?”

“네. 고향에 있어요. 전화로 가끔 통화할 뿐 저도 못 본 지 오래됐습니다.”

미나의 표정은 쓸쓸하기까지 하였다.

“삼촌의 전화번호를 알려줄 수 있겠습니까?”

“네.”

미나는 휴대폰을 열고 외삼촌의 전화번호를 강호에게 넘겨주었다. 

“삼촌이 계시는 집주소까지 알려주십시오. 그리고 절대로 제가 찾아간다는 말을 하지 말아주십시오. 알겠습니까?”

미나는 말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주회장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사람을 찾은 것은 크나 큰 수확이였다.

“당장 해림으로 떠날 준비를 해라.”

강호는 나오자 부하 경찰에게 명령을 내렸다.


강호와 수하 경찰 2명이 해림에 도착한 것은 이른 아침이였다. 길가의 구멍가게에서 뜨끈뜨끈한 훈둔을 한사발씩 사먹은 강호는 해림에서 조사를 하던 박걸이와 함께 미나가 알려준 주소 대로 찾아갔다.

낮다란 단층집이였다. 타다 남은 석탄재를 금방 던진 듯 길 건너 눈무지에서는 아직도 흰김이 문문 피여오르고 있었다.

문패호를 확인한 후 강호는 대문을 두드렸다. 체격이 크고 머리가 반백인 중늙은이가 나왔다.

“누구를 찾으시오?”

낯선 사람들을 쓸어보는 로인의 눈매는 날카로웠다.

“청도에서 왔습니다.”

젊은 경찰이 경관증을 꺼내보였다.

“청도?”

“네. 미나라고 아시지요?”

강호가 사진을 꺼내보였다.

“네, 저의 조카입니다.”

“미나의 소개를 받고 왔습니다.”

“아. 추운데 좌우간 들어갑시다. 비록 루추한 집이지만…”

외조카의 이름을 대자 로인의 안색은 금새 풀렸다. 로인은 내외간이 함께 살고 있었다. 자식들은 모두 외국에 나가고 없다고 했다.

“미나의 남편, 주창도씨가 죽은 소식을 아십니까?”

강호가 물었다.

“아나 뭐나, 잘 죽었지뭐. 사람질 못할 개새끼 같은 게…”

주창도의 말이 나오자 로인은 대번에 욕사발을 퍼부었다.

“령감, 무슨 말을 그렇게 함부로, 낯선 사람들 앞에서…”

남편이 첫마디부터 욕을 해대자 안주인이 핀잔을 주었다.

“무슨 원한이 있습니까?”

강호가 살며시 곁들었다.

“공안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내가 다 말해버려야지.”

로인은 하소연할 데를 찾은 듯이 말 보따리를 풀었다.

“옛날 우리가 20대일 때 나와 주창도는 같이 놀았습니다. 비록 같은 향에서 살지 않았어도 서로 다니고 싸움도 같이 하고… 그런데 그 자식은 머리는 좋은데 인간이 참 망종이였습니다. 친구집에 가서도 자기가 한턱 내겠다 하고 말해놓고는 친구집의 씨암탉을 도적질해 잡아가지고 들어온단 말입니다.”

“허허허. 그럼 그 집 닭을 가만히 잡아다가 그 집에서 같이 먹는단 말입니까? 자기가 사가지고 온 것처럼?”

강호와 젊은 경찰들도 너무 어이없어 웃음보를 터뜨렸다.

“토끼도 자기 굴 옆의 풀은 먹지 않는다는데 이 자식은 승냥이보다도 더한 인간망종이였지요. 친구집에 가서도 친구에게 술을 꼴똑 먹인 다음 친구 마누라에게 달려든 놈입니다.”

로인은 쓰거운 듯 입을 쩝쩝 다셨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마침 그 집 마누라는 깊은 잠이 들지 않았지요. 그래서 소리쳤는데… ㅎㅎㅎ… 이 나그네라는 머저리는 창도를 때린 게 아니라 자기 마누라를 때리고 야단쳤습니다. 분명 창도 잘못인데도 이 머저리는 마누라 가랭이를 찢어버린다는지, 부지깽이로 지져버린다는지 야단입데다. ”

“아, 남자가 그러면 안되지요.”

강호가 로인의 말에 동감을 표했다.

“그때 그 마누라의 한마디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남편이 약하다 보니 이런 수모를 겪고도 맞아댄다고…”

령감이 마누라의 눈치를 살피듯 흘낏 건너보았다.

“그게 뭐 자랑거리라고 또 말한다. 쯧쯧쯧…”

로인의 마누라가 또 다시 핀잔 줬다.

“그때는 한창 젊었을 때이니까 친구 마누라에게 덮치는 놈과 사귀며 놀았다는 것이 분해서 못 참겠습데다. 그래서 그길로 달려 내려가 그저 반죽음 되게 패주었지요.”

로인의 얼굴에는 그때 호되게 족친에 대한 자긍심이 흐르고 있었다.

“그런 후 관계가 끊어졌습니까?”

강호가 물었다.

“아니.”

로인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어느 날, 미나가 맞선을 본다고 누님이 말씀하길래 내가 정말 기쁜 마음으로 가봤더니만, 아 글쎄, 주창도라는 놈이 와있지 않겠습니까? 억장이 무너졌지요. 내가 얼마나 고와했던 조카인데 저런 개새끼한테 시집간다고 하니까 뚜껑이 열렸지요. 당장 나가지 않으면 죽여버린다고 야단쳤습니다.”

조카의 이름을 떠올려보면서 로인의 눈가는 촉촉히 젖어갔다.

“내가 결사적으로 말리지 않았더면 우리 저 나그네 그 주창도인지 창고인지 하는 사람의 손목을 자르던 발목을 자르던 일을 냈을 겁니다.”

안로인도 혀를 끌끌 찼다.

“주회장이, 아니, 량해하십시오. 저희 청도에서는 그 사람을 주회장이라고 했으니까요. 그분이 그럼 이 지역에서는 덕을 쌓지 못하고 살았구만요.”

강호가 동참했다.

“인간도 아니지요. 인간도…”

로인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에게는 군대에 간 막내동생이 하나 있었습니다. 주창범이라고. 그때 그 동생이 련애를 하였는데 이 자식이 글쎄 견결히 반대를 하였다는 겁니다. 견결히! 왜 반대하였겠습니까?”

로인이 강호에게 한번 맞춰보라는 듯이 말했다. 로인의 눈에는 분노가 타오르고 있었다.

“글쎄요.”

강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 자식이 글쎄 제 친동생의 녀자를 욕심냈던 것입니다.”

“세상에!”

강호와 젊은 경찰들은 너무나 어이없이 입을 딱 벌렸다.

“아니, 친형제 사이에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요. 친형제면 절대 그럴 수 없겠지요. 그래서 후날 들은 얘기인데 입양한 자식이라고 합데다. 큰아들이 너무 자주 앓고 아래로 자식들이 생기지 않으니까 입양했다고 들었는데 모르지요, 뭐.”

안로인이 참견하였다.

“그 집 령감이 바람 피워 낳은 아이를 안고 왔다는 말도 있고 뭐…”

로인도 공감하였다.

“하여튼 그 자식은 망종이였지요.”

로인이 입에 올리기조차 쓰거운 듯 입을 쩝쩝 다시다가 말을 이었다.

“그때 그 녀자는 임신하였댔습니다. 그 녀자는 견결히 아이를 낳겠다고 했지만 이 개새끼는 배속의 아이를 떼버리기 위해 별 지랄을 다했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군대에 간 동생에게서 오는 편지를 자기가 먼저 뜯어본 후 동생의 필체를 모방하여 절교 편지를 써서 녀자에게 보냈습니다. 절교하면 아이를 지울 줄로 알고… 쯧쯧쯧”

로인은 치를 떨었다.

“그때 녀자는 배속의 아이를 보더라도 제발 갈라지지 말자고 날마다 편지를 써서 보냈지요. 신랑에게…”

로인은 말을 끊었다.

“그런데 신랑은 녀자의 편지를 한장도 받지 못했습니다. 왜!”

로인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때 우리 동네에서 편지를 보내려면 현성에 들어가야 하는데 임신한 녀자가 한번 움직인다는 게 쉬운 일입니까. 그래서 그는 매번 편지를 보낼 때마다 시내에 자주 들락거리는 주창도에게 부탁했지요. 신랑의 형님이라고 믿고 그랬지요. 그러나 이 개새끼는 편지를 그냥 쓰레기통에 처넣어버리고 백지장에 절교를 상징하는 가위와 칼을 그려보냈습니다.”

집안에는 먼지가 가라앉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주창도의 동생은 부대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갈라졌다는 마음의 아픔을 못 견뎌낸 채 훈련하다가 잘못된 것이지요. 향민정국의 사람들과 함께 유물을 정리하다가 그 녀자는 결국 알았지요. 누군가 편지를 가지고 롱간했다는 것을… 죽는 순간에도 남자가 마지막으로 부른 이름은 바로 사랑하는 녀자의 이름이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베개 밑에는 가위와 칼을 그려보낸 녀자의 편지가 수두룩히 있었구요…”

더 할말이 없었다. 로인은 그 뒤로 녀자를 못 봤다고 했다. 해산하다가 잘못되였다는 말도 있고 아이와 같이 자결했다는 말도 있고 모르겠다고 하였다.

“그 녀자 이름은 혹시 알 만합니까?”

“아나 뭐나. 내 처제하고 생년월일도 똑같습니다.”

“네? 정말입니까?”

강호가 놀란 듯이 물었다.

“그 녀자는 고아여서 양로원에서 자랐지요. 그래서 학교 다닐 때 생일날이면 우리집에 와서 그냥 같이 쇴습니다.”

젊은 경찰 동만이가 녀자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었다. 파출소에가서 호적을 파보면 신상정보는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주씨네 댁 사람 전부가 그런 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형이 악독하다 해도 동생은 선비 같은 집안이 많지 않습니까?”

강호가 말을 유도했다.

“하긴 그렇지요. 그 집 맏형은 정말 흥부 같은 사람입니다. 법 없이 살 사람이지요.”

안주인이 대답했다.

“여기에 살고 있습니까?”

강호가 물었다.

“네. 주회장인지 회충인지 하는 놈은 그렇게 잘산다고 하더구만. 형이 어떻게 사는가 한번 가보십시오. 피눈물 나게 삽니다. 그리고 정말 그 집에 가서는 자식 얘기를 꺼내지 마십시오. 어떻게 된 모양인지 무자식입니다.”

로인의 표정이 몹시 어두워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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