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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철국 장편스포츠실화] 챔피언 1965 (7) 어려운 세월에/제로의 답안

조글로 潮歌网 2020-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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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일련재


 신철국  장편스포츠실화 

-1965년 길림성축구팀 전국축구 갑급팀련맹경기 우승 실록


연변인민출판사


어려운 세월에


“물론 기술과 전술이 필요치 않다는건 아닌데… 필시 축구란건 종합운동인만큼 거기 한곳에만 너무 의지해도 안된다고 보네.그러찮은가?”

“종합… 운동?”

1960년대초, 중국축구계에서는 남방의 기술파축구가 성행하면서 북방의 많은 팀들이 그 영향을 받았었다. 팀들마다 훈련지도 사상에 일대 혼란이 일어났고 그릇된 편향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적지 않은 지도와 선수들이 자기의 기술과 전술 풍격을 던져버리고 맹목적으로 잔기술과 소범위내에서의 단거리련락을 선호하는 남방축구팀들의 풍격과 방법을 본받았던것이다.


(그럼…)

부지불식간 박만복의 눈앞으로 동계훈련때의 모습이 지나갔다.


1962년말부터 1963년초까지 광주시 이사도(二沙岛)국가체육훈련기지에서 가진 동계전지훈련에서 길림성축구팀은 기술훈련과 소범위내에서의 배합작전 강화에만 공력을 들였었다. 새 시즌에서 현란하고도 출중한 발재간에 기초한 정교한 기계의 움직임 같은 그런 화끈한 기술축구로 길림성축구팀을 비웃는 모든 팀들을 무력화시키는게 그때 박만복의 꿈이기도 했다. 하지만 초년병 같은 코치로서 사령탑을 잡은 박만복은 자신의 그 꿈을 실현하는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것이 무엇인지를 당시로서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있었다. 결과 팀은 재래로부터 늘 강조해왔던 전면적인 체력훈련을 홀시하게 됐고 나중에는 트렌드마크처럼 줄곧 보존해 왔던, 장백호랑이처럼 왕성한 체력을 바탕으로 용감히 맞서 싸우는 자신의 특점을 잃어버리고말았던것이다.


“자, 어디 한번 우리 선수들을 점검해보자구.”

그때 박로석이 박만복의 사색을 깨며 선창하듯 선수들의 이름을 불렀다.

“리광수!”

경기장 중간통로를 개척하고 공격돌파를 조직하는 무적의 “땅크”.

“지청룡!”

문지기가 미처 반응할 사이도 없이 대포알 같은 슈팅을 펑펑  날리는 “대포”.

“동경춘!”

측선돌파에서 훨훨 날아다니는 “제비”.

“김석주!”

날카로운 공차단으로 상대방 공격수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빗장”.

“박장수!”

그 어떤 슛이라도 마법의 자석마냥 품속에 빨아들이는 “거미손”.

“정종섭!”

쉴새없이 경기장을 휘젓고 다니며 불의의 역습을 들이대는 “특공대”.

“허경수!”

넘어질듯 쓰러질듯 조마조마하게 드리블을 하면서도 날카로운 송곳패스를 조달하는 “찰떡”.

“지운봉!”

명석한 두뇌로 전반 경기의 흐름을 파악하며 공방절주를 주도하는 “제갈량”.

“정지승!”

공간과 시간을 잘 활용하여 공련락을 주도하는 후방기지의 “발동기”.

그리고 홍종우, 김정식, 서병철, 류진석, 문승학, 김관선, 김종인, 박운식, 리창린… 아, 이 얼마나 훌륭하고 끌끌한 조선족남아들인가. 그런데 왜? 왜?

“내가 보기엔 체력에 문제가 생긴것 같아.”

“체력?”

순간 박만복의 머리속에 번쩍하고 섬광이 일었다.

(오, 그랬구나! 그래서 후반전에만 들어서면 늘 속도가 떨어지고 각종 기술적인 동작들도 거칠어지고 경기 운영에도 차질이 생기고…)


나라를 대표하여 쏘련원정경기에 나선 초창기 길림성축구팀(뒤줄 좌로부터 1. 지운봉, 2. 동경춘, 5.리창린, 8. 김석주. 앞줄 우 1. 박상복).


1955년에 결성된후 줄곧 갑급팀행렬의 선두진영에 포함돼있던 길림성축구팀, 지난해까지만 하여도 갑급경기에서 5등을 하였던 길림성축구팀이 을급팀으로 강등하게 된 진정한 원인은 다름아닌 바로 이것이였다!



(아…)

박만복으로서는 심각한 교훈이 아닐수가 없었다. 그나마 인제는 병의 근원을 알게 되였으니 팀을 다시 일으켜세울 희망이 생긴것이 불행중 다행이였다. 이제부터 합당한 처방을 찾는것이 급선무였다. 그리고 그 처방에 따라 열심히 조제하고 투약하고…


“어허, 저런! 자, 저길 보라구.”

박로석이 불쑥 가리키는 하남다리(지금의 연길대교)쪽으로 무심히 고개를 돌리던 박만복은 저도 몰래 몸을 흠칫 떨었다.

오후훈련을 마친 길림성축구팀 선수들이 주장(主將) 지운봉(훈련책임)과 부주장 정지승(생활책임)의 인솔아래 일렬종대로 다리우를 지나고있었는데 그들이 힘차게 딛고있는 자전거페달이 해빛에 번쩍번쩍 빛나고있었던것이다.

“자전거?”

“그래, ‘영구’표야. 3년재해로 어려운 시기지만 그래도 정부와 상급에선 우리 성팀을 돌보느라고 저렇게 체육용품상점 1) 에 부탁하여… 인젠 훈련하러 다니기도 퍽 쉬울거야. 저걸 타고 다니면.”


공원안에 자리 잡은 체육장으로 헐금씨금 달려와 땀벌창이되여 훈련하는 선수들 2) 한테, 그것도 을급팀으로 강등한 선수들한테 서슴없이 베푼 이 크나큰 배려. 그앞에서 박만복은 일시 할 말을 잊었다. 그래 뭐라고 말한단 말인가. 우리 길림성축구팀을 자신 눈동자처럼 간주하고 사랑해온 민족의 축구팬들한테 죄를 지은 내가! 1960년대초, 력사적으로 보기 드문 자연재해가 련속 3년(1961—1963년) 동안 중국을 습격했다. 이는 새 중국이 탄생한 이후 처음으로 겪는 엄중한 재난이기도 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형제국가였던 중쏘관계에 금이 실리면서 쏘련의 대중국경제기술원조마저 완전히 끊어지고말았다.


1) 1951년 8월, 중화전국체육총회 연변분회가 정식으로 세워졌는데 그때 체육분회산하에 경제실체인 체육운동용품상점을 두었었다. 체육분회에 깊은 중시를 돌렸던 연변전원공서에서는 주덕해의 비준을 거쳐 체육운동용품상점기금으로 7,000원을 내려보냈었다.


2) 당시 선수들의 기숙사가 있었던 연변체육공작대 사무청사는 지금의 연변직업기술학원자리에 위치해있었으므로 선수들이 공원안에 있는 체육장으로 훈련하러 다닐 때 교통이 아주 불편했었다.



중국은 전대미문의 심각한 경제난에 봉착했고 따라서 물질적,기술적 토대에 의거해 한창 대중화, 사회화로 이행하고있던 중국축구운동에마저 급제동이 걸리고말았다. 중국축구협회에서는 국내 최고타이틀인 “전국축구 갑급팀련맹경기”와 “전국축구분구경기”만 남긴채 기타 형식의 모든 축구경기들을 취소했었다.


“여보시오, 두 사람이 여기서 무슨 비밀회의라도 하고있는게 아닙니까? 하하하!”

홀연 강뚝우에서 들려오는 귀에 익은 목소리에 둘은 약속이나 한듯 그리로 휘익 고개를 돌렸다. 물이 난 회색중산복을 입은 황택균주임과 함께 박상복이 너부죽한 얼굴에 미소를 담은채 그들을 바라보며 싱글싱글 웃고있었다.

“이크, 자네 직계상급이 왔구만그래. 하하하!”

모자를 이마우로 밀어올리고 잠시 박상복을 쳐다보던 박로석이 박만복한테 두눈을 끔쩍했다. 장난기가 어린 늙은이의 익살스러운 표정이였다.

올해 박만복이 길림성축구팀의 지휘봉을 잡으면서부터 조직의 요구에 따라 총지도로 자리를 옮긴 박상복, 그 역시 박만복한테 있어서는 한시라도 떨어질수 없는 절친한 동료이자 선배였다. 길림성축구팀이 고고성을 울려서부터 여태껏 주력선수로, 그후에는 지도로 활약해왔던 박상복의 탁월한 지휘능력은 정말이지 국내축구인들치고 공인하지 않는 사람이 별반 없었다.


“그럼 어디 슬슬 올라가볼가?”

둘은 곧 강뚝우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자!”

허리를 구부정해가지고 씨엉씨엉 올라가는 박로석의 뒤로 머리를 푹 떨군채 터벅터벅 올라오는 박만복을 이윽히 지켜보고있던 황택균주임이 기다렸다는듯 손을 쑥 내밀어왔다.

“이 수첩… 당신의것이 맞지?”

빨간색비닐가위가 씌워진 작은 수첩이 황택균주임의 손에 들려있었다. 박만복이 축구팀의 훈련정황과 경기상황에 관련해 수시로 메모해두던 지도원수첩이였다. 이제 보니 아까 황택균주임과 말다툼을 하고 홱 돌따설 때 떨어뜨린것이 분명했다.

“저…”

박만복은 손을 내밀다말고 뭔가 무엇해졌다.

“아까는 내가 잘못했소. 점심때 성에서 걸려온 장문해 부성장의 꾸중전화를 받고 그만 기분이 잡쳐서… 에이, 죄다 이 불같은 성격때문이라니까. 허허, 많이 량해해주오.”

“아니, 제가 오히려…”

“됐네, 됐어. 사내들이란게 고까짓 일을 가지구 시시하게.”


박상복이 옆에서 입을 삐죽거리며 그게 마치 자기의 일인것처럼 제쪽에서 홰홰 손사래를 치다가 갑자기 뭐가 생각났다는듯 박로석의 곁으로 다가왔다.

“자, 어서 갑시다.”

“어디로?”

박상복이 박로석의 귀가에 손나팔을 가져다대고 비밀스럽게 소곤거렸다.

“아까 오후편에 주정부에서 뭘 좀 보내왔다고 합니다.”

“뭘?”

“사탕가루에 콩기름에 두루두루…”

“아니, 그 귀한것들을 어떻게?”

세상에 류례 없는 자연재해가 휩쓸고있는 세월에 사탕가루며 콩기름은 그들한테 있어선 그야말로 사치품이나 진배 없는 귀중한 식품들이였다. 그런데 그 귀중한것을 주정부에서 보내왔다니!

“주아바이가 축구팀의 생활개선에 보태라고 했답니다.”

황택균주임이 설명을 달았다.

“주장량반이?”

주덕해, 설립 당시 길림성의 성소재지 장춘에 닻줄을 푼 길림성축구팀을 연변에 내려보내도록 수차 요구했던 연변의 제1임 책임자, 그가 1961년에 길림성축구팀더러 연길로 자리를 옮기게 한 것은 진정 축구를 사랑하는 조선족축구팬들에 대한 그의 배려였다. 중국축구의 최고수준을 대변하는 갑급팀을 두고있다는 그 자체가 연변의 자랑이요, 조선족들의 자랑이였다. 그리고 선수단 절 대다수가 연변을 연고지로 두고있고 나아가 길림성축구팀에 장차 후생력량을 제공할수 있는 요람도 다름아닌 “축구의 고향” 연변이라는것 역시 자랑스러운 일이였다.


“참 자상한분이시야. 이 어려운 시기에…”

박로석이 깊은 감개에 젖어 눈시울을 붉히는데 기다렸다는듯 박상복이 동을 달았다.

“대단한분이지요. 재작년에 성팀이 연변에 돌아왔을 때도 직접 선수들 숙사까지 찾아와보시더니…”

옆에서 잠자코 그들의 말을 듣고있던 박만복의 가슴은 더없이 괴로와났다. 연변인민이 그토록 존경해마지않는 지도자에게, 또한 그토록 연변의 축구팬들을 위해 물심량면으로 길림성축구팀을 보살펴주고있는 지도자에게 한없이 죄스럽고 부끄럽기만 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그냥 파고들어가 숨어버리고만 싶었다.


1959년 5월, 연길에서 치른 조선 함경북도축구팀과 연변축구팀의 시합이 끝난 뒤 조선선수들과 친절히 악수하고있는 주덕해(우 1)주장.


그때였다.

“황주임-”

다리목으로부터 세로 꺾어진 강뚝길로 한 사내가 부리나케 뛰여왔다.

“아니, 저게 누구요?”

“허동무가 아니요?”

“명룡이가?”

그 사람은 다름아닌 금번 전국축구 갑급팀련맹경기에서 길림성축구팀의 코치로 나섰던 연변체육공작대의 허명룡이였다.

“허동무, 무슨 일이요?”

황택균주임앞으로 헐레벌떡 달려온 허명룡은 가타부타 말없이 날숨만 몰아쉬다가 이윽해서야 떠듬거리기 시작했다.

“동, 동경춘이 병원에서 점적주사를 맞다가 사, 사라졌답니다.”

“네? 경춘이가요? 왜서요?”

박만복의 입에서 거센 소리가 터졌다.

“글쎄 우리 대가 갑급에서 떨어졌다는 말을 듣자 단박에 자리를 박차고 맨발바람으로 뛰쳐나갔다는데…”

“뭐요, 맨발바람으루?”

순간, 넷은 그 자리에 뚝 그루박히고말았다.



제로의 답안

서쪽하늘에 저녁노을이 곱게 물들고있었다.

오후훈련을 마치자 바람으로 신바람나게 타고 온 자전거들을 선수들이 아기 다루듯 기숙사 앞마당의 자전거보관실로 조심조심밀고 오는데 “따르릉!” 하고 맵짠 벨소리가 터졌다.


맨 뒤끝에 있던 정종섭이였다. 지난해(1962년) 룡정고중 졸업을 앞두고 길림성축구팀에 입단한 약관의 나이의 정종섭, 부러운 눈길로 요모조모 자전거를 뜯어보며 밀고 오다가 그만 방울을 다

친 모양, 황급히 방울을 움켜잡고 어쩔바를 몰라했다.

“허허, 방울이 욕심났던가?”

팀에서 생활을 책임진 주장인 정지승한테 자기가 타고 온 자전거를 인계하고 돌아나오던 지청룡이 지꿎게 롱을 걸었다.

시나브로 팀이 신로교체를 시작하면서 좌상으로 자리를 옮겨앉은 로장 지청룡(1935년 출생), 길림성축구팀의 창단 초창기 멤버이며 1960년대에 들어와서는 팀의 주장으로도 활약한 그를 동료들은 하나같이 존경하고있었다. 더우기 축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개인기량이 그무렵 국내 정상급수준을 대변하고있다는 점에서 금방 팀에 입단한 초년병들은 하나같이 그를 우상으로 모시고 있었다.

화룡현이 고향인 지청룡은 1952년에 돈화중학교를 다닐 때부터 학교축구팀의 주력으로 두각을 내밀었었다. 스무살 나던 해에 길림성축구팀에 입단한 그는 1959년에 북경에서 열린 제1회 전국운동회에서 일약 꼴 네개를 기록하며 “최우수공격수”라는 칭호로 중국대표팀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화제의 인물이기도 했다. 그해 쏘련에서 펼쳐진 6차의 방문경기에서도 련속 꼴 8개를 작렬시켜 좌중을 경악케 했고 이듬해 조선에서 있었던 6차의 방문경기에서도 줄줄이 꼴 9개를 쏟아내며 조선축구계의 탄성을 자아냈던 그였다.


막강한 파괴력을 가진 대포알슈팅력이 그가 갖고있는 특기중의 하나였는데 일단 프리킥을 주도한다고 하면 상대방에서 방패막이로 나서는 선수가 별로 없을 지경이였다. 그 매서운 “철퇴강타”에 한번 당해본 선수라면 마지못해 방패로 나섰다가도 그가 공을 찌르기 무섭게 얼른 피해버리기가 일쑤였다. 게다가 적아를 분간할수 없는 대방 문전에서의 혼전속에서도 랭정함을 잃지 않고현란한 드리블로 수비수들을 휘젓다가 우르르 따돌리고 전광석화같은 스피드로 날카롭게 슛을 날려 그물을 출렁이게 하는 득점력또한 국내 선수들가운데서도 일품이였다.

“저…”

“허허…”

붉게 상기된 얼굴로 몸둘바를 모르는 정종섭을 한동안 재미난다는 표정으로 싱글벙글 바라보던 지청룡은 그만 가봐라는 뜻 


중국대표팀 선수시절의 지청룡.


으로 툭툭 등을 두드려주었다. 팀의 막내인 정종섭은 평시에 말수가 적고 행동거지도 처녀애들처럼 고분고분했으나 일단 뽈을 찰라 치면 완전 딴판이였다. 자기가 몰고 가던 공을 상대방이 채가기라도 하면 끝까지 이악스레 접어들어 빼앗아왔고 공격에 속도가 붙는다 하면 신바닥에 불이 날 지경으로 쏜살같이 그라운드를 질주하군 했다. 그때면 땀에 함빡 젖은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이 총기가 어린 되박이마를 살짝 내리덮군 했다. 싹수가 보이는 친구였다.


지금은 벤취를 지키고있지만 머지않은 장래에는 팀의 대들보를 짊어질 재목임이 틀림없었다. 지난해부터 팀에 새로운 색갈을 입히고있는 신임지도 박만복의 괴까다로운 훈련에도 인차 적응하고 있으니 말이다. 관건은 저처럼 어린 선수들한테 절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신심을 불어넣어주는것인데 팀이 지금 강등론난으로 홍역을 치르고있으니…


자전거를 들여놓고 정비하느라 한바탕 부산하게 돌아치던 동료들이 웃고 떠들며 기숙사로 들어가고있는데 지청룡이 저만큼 따로 처져 따라가고있는 정지승을 조용히 불렀다.


“이봐, 경춘이는 지금 어느 정돈가?”

동경춘의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고있는가 하는 물음이였다.

지청룡, 손중천, 리광수가 호흡을 맞춰왔던 길림성축구팀의 공격진 삼각편대를 지난해부터 팀의 지휘봉을 잡은 신임지도 박만복이 지운봉과 동경춘, 허경수로 대체해 시험하고있는중이였다.

“글쎄요…”

정지승이 자기도 잘 모르고있는지 애매하게 말끝을 흐렸다.

“우리 대… 정황은 어느 정도 알고있겠지?”

“글쎄…”

재차 애매하게 말끝을 흐리며 저도 몰래 대문밖으로 향하던 정지승의 두눈이 홀연 데꾼해졌다. 대문과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동경춘이 헐레벌떡 달려오고있는것이 아닌가!

급성황달간염때문에 결국 리그도중에 입원치료를 받아야만했던 동경춘, 그에게 있어서 길림성축구팀의 강등은 그야말로 청천벽력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상하게 물에 젖은 솜마냥 좀처럼 맥을 쓰지 못하던 팀의 전투력, 박자 없는 공방절주, 이 빠진 공격루트,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그것들을 하나하나 목격하며 안타깝게 마음만 졸였던 팀의 주력공격수 동경춘이였다. 눈만 감으면 그것이 생각나 괴로와 죽을 맛인데 인젠 강등론난에까지 휩싸이다니!


이게 그래 어디 될법한 이야기란 말인가.

“제길, 우리 성대가 을급으로 떨어지게 됐대.”

“뭐야, 우리 길림성대가?”

“다음해부턴 갑급에다 12등까지 두는데 우리 대는 올해 13등을 했다나. 허 참!”

“모르는 소리. ‘8.1’대와 상해대가 국제경기때문에 등수기록을 하지 않았으니 그렇지.”

“오, 그랬는가?”

“그럼 그들까지 등수에다 넣었더라믄 15등?”

“뭐야, 15등이라니! 우리 성대가? 어이구, 어쩌다 그 꼴이 됐지?”

“에잇!”

동경춘은 그만 참을수가 없어 와락 병실에서 뛰쳐나오고말았다. 사실인지 거짓인지 한시바삐 그 진상을 알고싶었다. 정녕 이것이 사실이라면 누구인가를 붙잡고 한바탕 해내고싶은 심정이였다.


박만복, 그는 동경춘의 롤모델이였다. 세계축구의 한획을 그어가고있는 웽그리아에서 당당히 류학했던 중국대표팀의 선수이자 왕청현 흥당련합중학교에서 동문수학을 했던 선배 1) 였다고 동네방네에 자랑했던 박만복, 동경춘은 자기도 그런 선수가 되여보고저 젊은 가슴을 불태웠었는데…


그처럼 우상으로 모셔두고 표척으로 간주했던 박만복이 지난해 길림성축구팀의 지휘봉을 잡자 동경춘은 내심 벅차오르는 흥분을 걷잡을수가 없었다. 생각없이 힘만 쓰는 야만적인 동네축구라는 뒤소리를 듣던 길림성축구가 그 재수없는 오명을 벗게 되였다고 말이다. 이제야말로 기술축구를 한답시고 코가 우뚝해서 부산하게 설쳐대는 남방의 축구인들한테 우리 길림성축구팀이 단단히 본때를 보여주게 되였다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었다. 그래서 지난해 년말에 시작된 동계훈련에서 남들보다 기술적인 훈련에 치중하여 갈고 닦은 몸들이였는데…

(도대체 왜? 왜?)

왈칵 눈물이 쏟아지도록 화가 치밀어 한달음에 연변체육운동위원회 사무청사에 자리 잡은 기숙사까지 달려온 그였다.

“아니, 이게 누구요?”


1) 1955년에 졸업한 동경춘은 박만복의 4년 후배였다.


입을 딱 벌리고있던 정지승이 반색을 하며 그를 반겼다.

“어, 정대장.”

“아니, 이게 경춘이 아닌가. 병원에 있지는 않구… 그래 병은 다 나았어?”

뒤미처 경춘이를 발견한 지청룡이 정지승과 마찬가지로 두눈을 둥그렇게 떴다. 동경춘의 몰골이 말이 아니였기때문이였다.

“그건 그렇구, 우리 대가 을급으루 떨어졌다던데?”

동경춘의 안타까운 눈길이 번갈아가며 두 사람을 일별했다.

“어험, 어험.”

지청룡이 어색하게 기침을 하며 동경춘의 시선을 피해 얼른 다른데로 눈길을 가져갔다.

“정말인가?”

말없이 목에 걸친 수건으로 얼굴을 훔치기만 하던 정지승이 재차 들이대는 동경춘의 질문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순간, 동경춘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맨발바람에 뛰여 온 그의 오른발 엄지끝에서 검붉은 피가 짙게 배여나오고있었다.

무엇에 찔려 터진것 같았는데 그 자신은 그걸 감감 의식하지 못한 채 허탈하게 무너져있었다.

강등! 아아, 이게 그래 우리의 실력이였단 말인가? 이게 그래 이제껏 갑급팀에서 매양 전통강호로 군림해오며 8강에 안주해왔던 우리 길림성축구팀의 답안이였단 말인가? 축구팬들에게 올린 제로의 답안…

(계속)


[신철국 장편스포츠실화] 챔피언 1965


차례(지난 기사는 클릭해 볼수 있습니다)

제1장 시련의 계단

봉변/기회의 신(神)/ 결심출국 류학스승의 마음 문제는 어디에?/ 축구의 고향 잊은것과 잃은것/ 어려운 세월에 제로의 답안 맨발의 선수 첫발자국 희망을 향하여 


제2장 재기의 언덕

“백전로장” 원수(元帅)가 준 별호 최초의 전설들(1) 최초의 전설들(2) 

새로운 출발 “3종1대”개천의 룡들(1) 개천의 룡들(2) 이사도(二沙岛) 

희로애락 “몰인정”했던 리유 뒤로 밀린 리발 신입대원 정동권 

제3장 승자는 말한다

원자탄 불청객 분노의 벽 빅장대결 귀로의 기쁨 영광의 서장(1) 영광의 서장(2) 불멸의 승부(1) 불멸의 승부(2)




신철국

작가


연길명동문화예술원

부원장

【신철국 작가 프로필】

1971년 왕청현 하마탕향 전하촌(汪清县蛤蚂塘乡前河村)출생

연변대학 조선언어문학학부 졸업


연변민족문학원(제1기/1994년), 로신문학원(제30기중청년고급연구토론반·아동문학/2016년) 수료.


‹중국조선족백년실록›집필위원회 위원(스포츠) 력임.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청소년부, '흑룡강신문','길림신문'에서 다편간 편집, 기자로 활약. 연변작가협회 회원.


1986년 아동소설 '신방주인'으로 등단.


'화신문학상','압록강문학상','흑토문학상','연변라지오문학상','상익컵 실화문학상' 등 수상경력 다수. 


단행본 장편스포츠실화 ‹챔피언 1965› 출간.


공저로 ‹60주년에 만난 60인›, ‹중국조선족백년실록›, ‹연변축구의 발자취를 찾아서› 등이 있음.


현재 명동문화예술원 부원장 겸 글짓기지도로 근무.



 안내 : "문학작품"은 sinbalam과 위챗친구하여 보내주시면 등재해드립니다.-신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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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강일 추리소설] 도시는 알고 있다(16) 문학작품 더 보기(请点击) 

2020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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