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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철국 장편스포츠실화] 챔피언 1965 (17)

조글로 潮歌网 2020-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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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일련재

 신철국  장편스포츠실화 

-1965년 길림성축구팀 전국축구 갑급팀련맹경기 우승 실록


연변인민출판사


분노의 벽


그날 저녁, 지운봉은 조용히 박만복을 찾아가서 조서전이 찾아온 경위를 대강 털어놓았다.

“그래 자네 보기엔?”

지운봉으로부터 사연을 전해들은 박만복은 이윽히 대답이 없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박만복도 남경부대팀의 사정을 모르고있는것은 아니였다. 매 번 이때면 갑급팀 승격을 향해 진군하던 팀들이 약속이나 하듯 열사병처럼 앓고있는 병, 박만복도 이런 력사가 있지 않았던가.


그때 잠자코 있던 지운봉이 침묵을 깼다.

“사천대가 홈팀이라고 너무 우쭐거리고있는것 같습니다.”

“우쭐거린다?”

“저… 심판들도 은근히 싸주는 눈칩니다.”

“그렇다고?”

“……”

또 침묵이 흘렀다.

그 시각, 박만복은 이름할수 없는 착잡한 심정에 사로잡혀있었다.

국가체육운동위원회에서는 1957년 1월 7일과 1958년 6월 26일에 두차례에 걸쳐 22명의 중국 제1대 국가급축구심판원을 비준, 공포하였었다. 그중에는 조선족들인 채송철과 마금춘도 들어있었다. 그후로 리태묵, 김자덕 1) 등 수십명에 달하는 조선족심판들이 경상적으로 진행되는 전국적인 축구대회와 국제경기에서 호각을 불고는 있었지만 은근히 홈팀을 싸고도는 심판들의 딴죽걸이에 골치를 앓고있는 처지였다.


1) 1950년대 흑룡강성 녕안현팀과 목단강팀의 문지기로 활약. 1963년에 중국축구 1급심판원으로 된 그는 1979년 전국축구 갑급팀련맹경기 중경경기구에서 고찰을 거쳐 국가급심판으로 비준받음. 100여차의 국가급축구경기에서 심판으로 활약.


“휴-”

박만복은 길게 한숨을 내쉬였다.

중국의 광활한 축구무대에서는 우리의 끌끌한 조선족사나이들이 가는 곳마다 보석처럼 빛을 뿌리고있었다. 20세기 50년대로 부터 60년대에 이르기까지 연변에서 전국 27개 축구팀에 270여 명, 길림성내 직업축구팀에 370여명의 선수를 수송했다는 사실 하나만 놓고보더라도 중국축구에 공헌한 그들의 가치를 알고도 나머지가 있었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우리네 동포들인가. 특히 중국축구운동발전사에 굵직한 한획을 그은 부대축구팀들에는 당시


당년의 조선족 국가급축구심판원들. 좌로부터 채송철, 마금춘, 리태묵, 김자덕.


우리의 조선족사나이들이 한몫을 튼튼히 담당하고있었으니 자연히 타민족들의 부러움과 질투를 살만도 했다. “8.1”팀을 비롯하여 해방군청년팀, 북경부대팀, 심양부대팀, 남경부대팀, 공정병부대팀, 공군부대팀, 지원군부대팀 그리고 전국공안팀… 그중에서도 심양부대팀에는 40여명, 남경부대팀에는 10여명의 기라성 같은 조선족선수들이 대거 포진해있었다.


정말이지 어떤 경기에서는 진정 조선족선수들끼리 자존심을 겨루는 우정의 시합으로까지 치러지고있는 판이였다.

한동안 창밖을 응시하고있던 박만복이 지운봉쪽으로 돌아섰다.

“운봉이, 가서 지승이를 불러오게.”

“네?”

“한번 토론해봐야겠소.”

“래일 경기를요?”

“사천대를 그냥…”

홈팀이랍시고 우쭐거리는 사천축구팀과 또 그러한 팀을 역성드는 심판들의 아니꼬운 얼굴이 번개같이 박만복의 눈앞으로 지나가는 순간이였다. 욱하고 피가 끓었다.


“같잖은것들!”

저도 몰래 박만복의 입가로부터 노한 음성이 새여나왔다.

오기, 그것은 분명 오기였다. 공평경쟁이라는 찬란한 프랑카드를 걸어놓고 뒤에서는 음으로 양으로 축구장에 비리를 살포하는 인간들에게 한바탕 회초리를 휘두르고만 싶었던것이다. 때리면 때릴수록 더 강하게, 더 힘차게 튀여오르는 축구공, 그 축구공의 성격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저변에 숨어있는 부호가 아니였던가.


우승을 포기한 빅장경기, 부풀어오른 선수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무승부경기인데도 박만복이 굳이 그 길을 택하는 리유라면 단 하나, 신성한 축구장을 놀음판으로 보는 그런 한줌도 못되는 얼간이들한테 경종을 울려주기 위해서였다. 어찌 보면 무모하고 어처구니없는 행위의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박만복은 나름대로 비리가 란무할 때는 필요한 수단이라고 여겼다…



빅장대결


박만복과 헤여져 숙사로 돌아온 지운봉은 자리에 누웠으나 이런저런 생각으로 공연히 마음만 심란해져서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리저리 자반뒤집기만 하고있는데 부지중 낮에 그를 찾아왔던 박광철이 그한테 들려준 말이 떠올랐다.


“중국축구계에 샛별이 나타났어.”

“샛별? 그게 누구지?”

“리주철이라고…”

“리주철?”

“흑룡강성에 있는 조선족인데…”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 지운봉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뒤미처 “조선족”이라는 말에 어쩐지 귀맛이 당겼다.


“지난 8월에 북경에서 전군공군부대운동대회가 있었지. 그때 심양공군부대도 참가했는데 글쎄 그 팀에 있던 리주철이란 애숭이가 여섯번 시합에서 꼴을 8개나 터뜨렸지 뭐야.”

“뭐라, 여덟개나?”

지운봉의 입이 떡 벌어졌다.


리주철(李宙哲)!

첫돌생일날에 하많은 물건중에서 유독 자그마한 빨간 공을 쥐여잡았다는 조선족축구계의 신동, 후날 중국의 축구사료들은 왕년에 중국축구계를 주름 잡았던 이 조선족축구스타를 이렇게 기록하고있다.


중국축구운동건장, 아시아 최우수 오른쪽날개.

1945년 9월 21일, 길림성 도문시에서 출생.

1946년, 흑룡강성 계동현 계림공사 영광촌으로 이주.

1963년 8월, 계림중학교에서 참군하여 심양공군부대 독립 제18퇀 고사포련의 포병으로 근무. 그해 우연히 사부에서 열린 운동회에 참가해 뛰여난 표현으로 심양공군부대축구팀에 입선.

1964년 8월, 북경에서 열린 전국공군부대운동대회에 참가해 6차의 시합에서 도합 꼴 8개를 넣어 경기장을 들썽. 그후 전국공군축구팀에 입선, 당시 나이 17세.

1969년 11월, 중국국가대표팀에 가입, 우익공격수로 활약. 제6회, 제7회 아시아운동대회에 참가하여 공을 세움. 특히 제6회 아시아대회 일본팀과의 겨룸에서 경기 개시 20분만에 날카로운 드리블로 수명의 일본팀 방어수를 제치고 벌축구역부근에서 강슛으로 꼴을 작렬, 이 꼴로 승부를 결정 지어 아시아축구계에 크게 명성을 떨침.

1977년, 은퇴. 그후 8.1소년축구팀, 국가소년축구팀 지도로 활약.

2002년, 북경에서 별세.


키는 작으나 몸이 다부지고 속도가 빠르고 령활하며 평시의 훈련에서 남달리 부지런해 늘 왕성한 체력을 구비하고 치렬한 대항속에서 상대방의 방어진을 돌파하여 득점 기회를 창조한다는 리주철이였다.


1962년, 《북경석간(北京晚报)》에서 선출한 10명의 전국최우수득점수에 8.1팀의 조선족선수인 리송봉과 함께 나란히 이름을 올렸던 지운봉은 “리주철”이라는 또 한 명의 조선족축구유망주가 나타났다는 말에 은근히 속으로 자부심을 느끼며 “쩝쩝” 입을 다셨다.

(축구는 그래도 우리 조선족들이…)

그러는 사이 자기도 모르게 스르르 눈까풀이 내려왔다. 처마밑의 락수물소리가 점점 귀가에 어슴푸레 들려왔다…


지난 세기 60-70년대 8.1축구팀의 맹장으로 활약했던 척무생과 리주철(우 1).


드디여 남경부대축구팀과의 시합이 시작되였다. 일단 길림성축구팀이 꼴을 하나 넣으면 너희들 중앙공격수가 공을 몰고 들어오라, 그럼 우리 수비선수가 금지구역안에서 무작정 걸어넘겨 페널티킥을 선물하겠으니…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그런 약속이 붙은 그렇고그런 “짜고 치는 고스톱경기”, 허나 그 약속을 길림성축구팀의 두 주장(지운봉과 정지승)과 지도 박만복을 제외하고는 다른 선수들은 감감 모르고있었다. 그래도 옛말에 “도적질도 손발이 맞아야 한다”고 정작 시합이 시작되자 박만복은 가슴을 조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무렵 박자 맞는 기술과 전술에 왕성한 체력을 앞세우고 막강한 공격력을 뽐내고있던 길림성축구팀의 득점수들인 동경춘,허경수 등이 좌충우돌로 련락부절하게 대방의 문전을 괴롭히고있었다. 그 바람에 경기 초반부터 남경부대축구팀은 공격 한번 제대로 구사해보지도 못하고 문전에서 방어하기에만 여념이 없는데 전반 경기가 거의 끝나갈무렵 드디여 일이 터지고야말았다.


어슬렁거리는것처럼 보이다가도 “꼴냄새”가 난다싶으면 폭발적인 문전쇄도에 이어 대포알슈팅으로 꼴문을 작렬시키던 허경수가 지운봉이 찔러주는 20여메터짜리 장거리패스를 받아가지고 벼락같이 대방의 금지구역 내곽안으로 뛰여드는것을 혼란에 빠져있던 남경부대축구팀의 수비수가 막아낸다는것이 그만 태클을 걸어 넘어뜨린것이다.


“호르륵!”

주심의 맵짠 호각소리와 함께 “와-” 하고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페널티킥!


주심이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내곽지대로 창살같이 손을 뻗었다.

“아차!”

순간, 지운봉은 지도석에 앉아있는 박만복을 바라보았다. 엉뚱하게도 박만복은 손목에 찬 시계를 내려다보고있었다.

“재깍! 재깍!”

경기종료시간이 박두하고있었다. 그때 정지승이 지운봉한테로 부리나케 뛰여왔다. 이왕의 페널티킥은 정(正), 부(副) 주장을 맡고있는 지운봉과 정지승이 전담하고있던터였다. 주심을 둘러싸고 “억울함”을 호소하고있던 남경부대축구팀 주장 조서전이 긴장된 눈길로 지운봉과 정지승을 번갈아 바라보며 랑패상을 지었다.


애원과 절망이 어린 여러 눈길들이 길림성축구팀의 두 주장을 직시하고있었다. 이름할수 없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 정지승과 귀속말을 나누고있던 지운봉이 성큼 공앞으로 나섰다.

“호르륵!”

귀전을 때리는 날카로운 호각소리와 함께 지운봉의 오른쪽발끝이 번개같이 공을 때렸다.

“탕!”

공은 어쩔 새 없이 문대우로 휭- 하니 날아지나갔다. 어이없는 사태에 동경춘, 허경수, 류진석을 비롯한 길림성축구팀 선수들이 멍하니 굳어졌고 대신 남경부대축구팀 선수들이 “와-” 하고 환성을 내질렀다. 그중에 조서전의 환성이 가장 길고 걸죽했다.

0대0.

경기는 무승부로 끝났다.

결과 남경부대축구팀과 길림성축구팀이 1등과 2등의 신분으로 다음해 갑급팀행렬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천신만고끝에 길림성축구팀이 또다시 갑급팀행렬에로 복귀한것이다. 1965년의 영광의 력사가 바야흐로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있었다. 손짓하고있었다!


귀로의 기쁨

길림성축구팀이 갑급팀행렬에로 복귀했다는 소식은 금방 나래라도 돋친듯 연변뿐만아니라 길림성 나아가 전국조선족사회에 파다하게 퍼졌다.

“우리 길림성대가 갑급으로 올라갔대.”

“갑급으루?”

“와- 그럼 인젠…”

“그럼 그렇지. 작년에 을급으루 내려간건 사실…”

“암, 절대루 실력이 낮아서가 아니였지. 아니였구말구.”

“아하하…”

박만복은 무수한 찬사와 뜨거운 격려가 꼭 꿈처럼 느껴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패배뒤에 따라오던 그 무수한 질타와 저주들이 그래 정말 오늘 사라졌단 말인가? 그리고 이것이 정말 생시란 말인가? 박만복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어보았다. 꿈이 아니였다.


어느새 박만복의 눈시울이 불깃하게 젖어들고있었다.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아니, 감사하긴. 오히려 내가 자네한테 감사하단 말을 해야겠는데.”

“예?”

“하하하, 자네가 우리 길림성대의 체면을 다시 세워줬으니 말이야. 그러니 내가 응당…”

숱한 일을 제쳐놓고 장춘기차역까지 마중을 나와 길림성축구팀 전체 선수들의 두손을 일일이 잡아주며 격려해주던 장문해 부성장이 박만복의 앞에 이르러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잘 싸웠어. 과시 용맹완강한 동북호랑이가 틀림없단 말이야.”

“이건 모두 상급동지들의 뜨거운 관심과 갈라놓을수 없습니다. 그리고 또 우리 선수들이 일치하게 단결, 분투하여 얻은 결과입니다.”

“하하, 그런가? 알만해, 알만하다구. 그럼 오늘저녁에는 내가 한턱을 내겠으니 이 승리를 경축하지. 자, 친구들-”

흥분에 벌겋게 얼굴이 상기되여있던 장문해 부성장이 홀연 앞가슴에 맞잡고있던 두손을 반공중으로 쫙 펼치더니 쏘련의 명곡 “까츄샤”1) 를 선창했다.


1) 로씨야 시인 미하일 이사꼽스끼가 똘스또이의 장편소설 《부활》의 녀주인공 까츄샤를 모델로 지은 시. 1938년, 모스크바 고리끼극장의 작곡가 마트베이 이사꼽위치 블란테르가 이를 노래로 만들었다. 전장으로 나가는 애인의 무사함을 기원하는 이 곡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 쏘련 붉은군대의 군가로도 널리 알려졌다.


하얀 배꽃 아득한 하늘

연한 파도 굽이쳐 흘러

까츄샤 바위에 높이 솟아

아름다운 봄노래 불러라


잠간 어리둥절해있던 선수들이 하나, 둘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문지기 박장수의 목소리가 가장 힘차게 울려나왔다.


처녀들은 노래 부르네

용맹한 초원의 매를

사랑하는 그대 그리며

까츄샤는 영원하리


어딘가 비장함이 섞인 그 노래를 들으며 박만복은 가슴이 울렁거렸다. 아직 피곤기가 채 가시지 않은 모습으로 저토록 흥겹게 노래를 부른다는 자체가 너무나도 신기했던것이다. 그냥 “락관적”이라는 그런 평범한 수사적인 어구로만으로는 표현할수 없는 이들 그리고 승리뒤에 오는 보람의 희열, 그 오열하듯 북받치는 희열앞에서는 모두가 어린이로 돌아가는것인가?


“저, 박지도.”

그때 등뒤에서 조용히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길림성체육운동위원회 김춘산비서장이 슬며시 그의 옆으로 다가와 귀전에다 나직이 속삭였다.

“박지도, 집의 아들애가 앓는다는구만.”

“예? 저의 아들애가요?”

“장춘에 도착하면 속히 들어오라고 연길에서 전보가 왔네.”

“전보?”

그제야 박만복은 불쑥 집생각이 났다. 그리운 안해와 아들애의 얼굴이 새삼스레 떠오르는 순간이였다. 이게 그래 몇달만이던가.(계속)


[신철국 장편스포츠실화] 챔피언 1965


차례(지난 기사는 클릭해 볼수 있습니다)

제1장 시련의 계단

봉변/기회의 신(神)결심출국 류학스승의 마음 문제는 어디에?축구의 고향 잊은것과 잃은것/ 어려운 세월에 제로의 답안 /맨발의 선수 첫발자국 /희망을 향하여 

제2장 재기의 언덕

“백전로장” 원수(元帅)가 준 별호 /최초의 전설들(1) 최초의 전설들(2) /

새로운 출발 /“3종1대”/개천의 룡들(1) 개천의 룡들(2)/ 이사도(二沙岛) 

희로애락/ “몰인정”했던 리유 뒤로 밀린 리발 신입대원 정동권 

제3장 승자는 말한다

원자탄 불청객/ 분노의 벽 빅장대결 귀로의 기쁨 영광의 서장(1) 영광의 서장(2) 불멸의 승부(1) 불멸의 승부(2)




신철국

작가


연길명동문화예술원

부원장

【신철국 작가 프로필】

1971년 왕청현 하마탕향 전하촌(汪清县蛤蚂塘乡前河村)출생

연변대학 조선언어문학학부 졸업


연변민족문학원(제1기/1994년), 로신문학원(제30기중청년고급연구토론반·아동문학/2016년) 수료.


‹중국조선족백년실록›집필위원회 위원(스포츠) 력임.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청소년부, '흑룡강신문','길림신문'에서 다편간 편집, 기자로 활약. 연변작가협회 회원.


1986년 아동소설 '신방주인'으로 등단.


'화신문학상','압록강문학상','흑토문학상','연변라지오문학상','상익컵 실화문학상' 등 수상경력 다수. 


단행본 장편스포츠실화 ‹챔피언 1965› 출간.


공저로 ‹60주년에 만난 60인›, ‹중국조선족백년실록›, ‹연변축구의 발자취를 찾아서› 등이 있음.


현재 명동문화예술원 부원장 겸 글짓기지도로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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