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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철국 장편스포츠실화] 챔피언 1965 (18) 영광의 서장

조글로 潮歌网 2020-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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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일련재

 신철국  장편스포츠실화 

-1965년 길림성축구팀 전국축구 갑급팀련맹경기 우승 실록


연변인민출판사


영광의 서장(1)


세월은 빨리도 흘러갔다. 봄이 왔는가싶더니 여름, 가을이 구름 따라, 바람 따라 흘러가고 눈이 부실거리는가싶더니 겨울철도 새털처럼 날려갔다. 그리고 새봄이 찾아왔다. 진달래 피고 종달새 지종거리는 새봄, 오매불망 바라던 그날이 드디여 대두했다!


길림성축구팀의 력사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길이길이 각인될 1965년 4월! 중국축구계에 대기록 경신을 예고하며 폭풍처럼 파란을 몰아왔던 흰옷 입은 사나이들의 전설같은 이야기가 1965년 전국축구 갑급팀련맹경기의 개시와 더불어 집필을 서두르고있었다.


국내 열두개 강팀들인 상해, 료녕, 천진, 광동, 북경, 8.1, 남경부대, 하북청년, 상해로동자, 섬서, 산동, 길림 등 팀이 남경과 항주에서 분조경기를 진행한 뒤 4월 16일부터 28일까지 상해에 집중하여 서서히 결승의 막바지, 그 화려한 대미를 장식하였다.


4월 4일, 지난해 전국축구 갑급팀련맹경기 준우승팀인 축구계의 맹주 상해팀을 4대2로 본때 있게 제압해버리고 6일에는 강팀 료녕팀과 대결한 길림성축구팀의 경기는 그야말로 국내축구무대에서는 한폭의 경전작품이 되기에 손색이 없었다. 그만큼 경기는 화끈했고 멋졌다. 우승을 향해 힘차게 비상하는 길림성축구팀의 량옆구리에 삐죽이 날개가 돋아나는 시합이기도 했다.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전반전 경기가 후반전으로 넘어가는 호각소리와 함께 경기의 흐름은 길림성축구팀의 일방적인 공격으로 이어졌다. 항상 대방팀에 부담거리로 등장해있던 지운봉이 연방 중거리포를 쏘는가 하면 “제비” 동경춘이 련이어 번개같이 문전을 괴롭히고 그러다 어디선가 공을 넘겨받은 허경수가 금지구역안을 넘보며 꼴냄새를 풍기느라 얼씬거리는데 잠 자는듯 가만히 숨 죽이고있던 정종섭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그 특유의 왼발잡이 슈팅으로 “탕! 탕!” 대방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말 그대로 료녕팀 문전은 완전히 길림성축구팀의 슛과녁으로 쑥대밭이 되고있었다.


1965년 전국축구 갑급팀련맹경기 개막식에 나선 길림성축구팀.


그러던 후반 15분경, 그라운드중심구역에서 공을 잡은 지운봉이 재빨리 오른쪽 측선구역으로 에돌아 료녕팀의 좌측으로 돌진했다. 그 바람에 반대편에 있던 료녕팀의 우익방어수가 부랴부랴 문앞으로 달려오는데 찰나 그 기회를 넘본 지운봉이 재치 있게 대방의 우익방어수가 금방 떠난 그 빈자리에다 사선으로 송곳패스를 찔렀다. 때를 맞추어 약속이나 한듯 번개같이 달려온 동경춘이 굴러온 공이 미처 멈추기도전에 번쩍 오른발을 날렸다. 철렁!


공은 대방의 문지기가 반응할 사이도 없이 휙- 문대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와-”

일순 장내에 폭풍 같은 함성이 일었다. 고무줄다리기라도 하듯 팽팽히 경직되여있던 축구장의 분위기를 드디여 깨뜨려버렸다는 흥분보다는 첨단기술이 도입된 생산흐름선을 금방 눈앞에서 목격하기라도 하듯 그 멋지고 절묘한 길림성축구팀의 배합전술에 온 장내가 넋을 잃은것이였다. 그러나 그것은 근근히 중국축구무대의 왕자라고 우쭐거리는 료녕팀의 제씨들한테 경고를 준 선제꼴에 불과했다. 뒤미처 육탄 같은 헤딩슛이 씽하니 그들의 문대안으로 날아들며 장내를 아연케 했다.


료녕팀의 외곽지대 우측부근에서 자유축을 얻은 길림성축구팀이 화살같이 문전으로 수송한 공을 대방의 문지기가 허우적거리며 잡으려는 순간 쏜살같이 달려들어온 허경수가 박치기하듯 공앞으로 힘껏 머리를 내지른것이다.

“꼴이다!”

“와야-”

잠시 숨 죽인듯 잠잠해있던 경기장이 아주 떠나갈듯했다.

중국축구계의 제왕 료녕팀이 연방 길림성축구팀한테 발목을 잡히자 대뜸 관중석이 소란해졌다. 길림성축구팀이 동기훈련기간에 무슨 “보약”이라도 썼기에 이토록 름름한 모습으로 1965년 전국축구 갑급팀련맹경기를 마구 휩쓴단 말이지?


의문이 실린 눈길들이 일제히 지도석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저앞에 앉은 저 사람이 바루 길림성대의 지도라우.”

“그 박 뭐라는 사람?”

“옳소. 박만복.”

“이전에 국가대에 있었다며?”

“웽그리아에 갔다온 축구류학생이라우. 조선족이고.”

“그런가?”

“앗따, 어디 그뿐이요? 1957년에 우리 나라서 제1대 축구운동건장 22명을 선포했는데 그중의 한명이라니까.”

그 시각, 박만복의 가슴은 세차게 두근거리고있었다.

지금 팀이 구사하고있는 전술은 이른바 “전면공격, 전면방어”

의 한 보기였다. “자기를 위주로 하고 공격을 위주로 하며 우세한 병력을 집중하여 섬멸전을 하는” 모택동주석의 군사원칙을 중국축구계가 축구운동의 특점에 결부시켜 새로 제출한 지도방침이기도 한데 이를테면 “전면적으로 공격하고 전면적으로 방어하며 다수로써 소수를 격파하고 신속하게 공격하고 공격을 위주로 하는 것”이 그 핵심이였다. 이는 선수들의 주관능동성을 충분히 발휘시키고 집단적력량을 발휘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고있었다.


그무렵 박만복이 리해하고있는 “전면공격, 전면방어”의 핵심은 대략 이러했다.


전면공격이란 방어선수가 공을 잡기만 하면 전 팀이 즉시로 반격상태에 진입하는것을 말한다. 공격수와 중간방어수들만 공격에 참가하는것이 아니라 수비수도 공격에 가담한다. 중간방어수와 방어수도 경상적으로 제일선의 공격에 나갈뿐만아니라 직접 문을 향해 돌입하면서 득점을 쟁취한다. 이에 따라 문지기 역시 공을 잡은후 목적 있게 신속히 공을 처리함으로써 공격을 발동하고 조직하는 역할을 한다.


이에 반해 전면방어란 곧 자기 팀의 공격이 실패해 공을 빼앗겼을 때 모든 선수들이 즉시 수비상태에 진입하는것을 말한다. 공을 어디에서 빼앗겼든 누가 그 부근에 있었든 모두 그곳에서 공 빼앗기에 나서야 한다. 만약 그 자리에서 공을 앗아냈다면 한차례의 좋은 공격기회를 얻는것으로 되기때문이다. 빼앗아내지 못한다고 해도 동료선수들이 후퇴해 방어할수 있는 시간적여유가 생

긴다.


허나 이 전술은 위치분공이 있지만 절대적으로 고정불변한것이 아니며 또 부동한 위치에서의 기술특장도 갖추어야만 한다. “전면공격, 전면방어”전술에서는 “방어수가 공격수로 되고 공격수가 방어수로 되는” 현상을 늘 보게 된다. 익측공격수가 안으로 꺾어들어가면 중앙공격수 혹은 내측공격수의 직능을 담당하고 중앙방어수 혹은 방어수가 측선으로 나가면 익측공격수로 된다. 방어수가 앞으로 나가면 그 위치를 대체한 익측공격수는 방어수로 된다. 어느 선수를 물론하고 모두 경기의 수요에 따라 어느 위치에 가든지 그 위치의 주인공이 돼야 한다.


이와 같은 “전면공격, 전면방어”전술을 실현하자면 큰 범위에서 활동할수 있는 중앙공격수와 속도가 빠른 익측공격수가 있어야 하는외에 더욱 주요한것은 륜번으로 제1선에 나갈수 있는 중앙방어수와 뒤에서 공격을 조직할 능력이 있는 방어선의 선수가 있어야 한다. 오직 방어선에서 공을 통제할수 있고 또 공격을 조직할 수 있는 기술을 장악해야만 중앙구역의 선수들이 제2선에 은페된 공격수의 역할을 충분히 발휘할수 있기때문이다.


허나 이 전술을 핵심 그대로 구사하려면 그 물질적보장이 따라야만 한다. 다름아닌 왕성한 체력이다. 경기 내내 그라운드를 주름 잡을수 있는 강한 체력이 우선 바탕이 되지 못하면 아무리 공격하려고 해도 공격할수 없고 방어하려고 해도 방어할수가 없는 것이다.

“3종1대”.

겨울철훈련기간에 박만복이 찾은 답안은 역시 그것이였다.



영광의 서장(2)


1963년의 겨울철훈련성과에 힘 입어 1964년 전국축구 을급팀련맹경기가 끝나기 바쁘게 재차 광주 이사도훈련기지에서 “3종1대”훈련원칙에 립각한 대운동량훈련에 돌입했던 선수들의 로고가 하나하나 성공의 열매로 나타나는 이때 박만복의 가슴 밑바닥 어디선가 크나큰 욕망 하나가 꿈틀거리고있었다.

(내친김에 한번 우승을 해보리라. 우승을!)

순간, 지난 음력설 광주 이사도에서 현지정부의 요청을 받고 광주팀과 축하시합을 치르던 장면이 박만복의 눈앞에 선히 떠올랐다.


길림성축구팀이 홈팀의 안면을 전혀 보지 않고 사정없이 몰아붙이자 일부 몰지각한 관중들이 그라운드에 돌멩이를 던지기 시작했다. 이는 스포츠대회정신에 위배되는 행위이기에 응당 조직측에서 제지해야 할터인데 조직측의 반응이란 고작 확성기를 통해 “문명하게 관람하자!”고 말하는것뿐이였다. 진작 경기를 중지해야 할 정도로 관중석의 분위기가 험악해지고있건만 그라운드의 법관을 자처하는 주심과 부심마저 홈팀을 싸고돌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결국 일이 터지고야말았다.


연방 꼴 두개나 허락하고 관중들의 야유에 씨근덕거리고있던 광주팀 선수들이 거친 동작으로 무작정 길림성축구팀 선수들을 반칙해왔던것이다. 그중에서도 30메터 거리를 3초 6에 주파하는 왼쪽 측선 수비 류진석이 큰 상처를 입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빠른 속도를 앞세워 후방에서의 공격루트를 개척하던 그를 광주팀의 선수가 정면에서 달려들어오며 공이 아닌 오른쪽정갱이를 향해 발길을 날린것이였다. 찰나, 정갱이의 살이 찢어지며 뼈가 허옇게 드러나는 참변이 발생했다. 류진석은 즉시 담가에 들려나왔고 마취제주사를 맞자 바람으로 곧장 병원에 옮겨졌다. 아차 하면 축구선수의 생애를 끝내야 할 큰 상처인데도 다행히 류진석은 보름뒤에 퇴원했고 부상당했던 정갱이에 두툼한 소설책 한권을 덧대여 끈으로 칭칭 동여매고는 훈련에 나서서 좌중을 감동시켰다. 물론이러한 사례는 혹독한 훈련으로 매일이다싶이 담금질하던 길림성축구팀에 있어서 류진석뿐이 아니였다.


팀 동료들과 함께 휴식의 한때를 보내는 류진석(우 1).


당시 북경로동자체육장 하나만 제외하고 전국의 모든 축구장들이 모래밭축구장에 진배 없다보니 그라운드에 나선 선수들은 시도 때도 없이 육체적으로 겪게 되는 위험부담을 감수해야만 했다. “파쑈”라는 욕을 얻어먹으면서도 타팀에 비해 더 가혹하게 선수들한테 훈련을 강요했던 길림성축구팀은 더욱 그러했다.


이처럼 혹독한 훈련으로 갈아온 선수들의 불타는 투혼도 대단했지만 공격속도가 빠른것 역시 길림성축구팀이 보여준 뚜렷한 특징가운데의 하나이기도 했다. 팀은 수년간 련마해온 익숙한 기술과 전술 의식을 갖추고있는데다가 간고한 동기, 춘기 훈련을 거쳐 체력 또한 전에없이 왕성했다. 동경춘, 류진석, 문승학, 김석주 등 선수들의 100메터 성적은 모두 11초 이내로서 속도전을 벌릴 수 있는 훌륭한 토대가 충분히 구비되여있었다.


료녕팀과의 대결에서 길림성축구팀이 3대1로 완승한후 길림성축구팀의 출중한 표현을 현장에서 목격했던 당시 국가체육운동위원회 축구처 처장 양수무(杨秀武)는 그 즉시 소감을 써서 이튿날 《체육보》에 발표하였는데 글에서는 길림성축구팀 선수들의 용맹하고도 세련된 시합풍격을 높이 찬양하였다.


“우량한 전통을 갖고있는 길림성축구팀은 용맹완강한 팀으로서 중국축구계의 강자로 되기에 손색이 없다. 이는 분명 지난날의 ‘동북호랑이’가 다시 돌아온것으로 봐야 한다.”


양수무의 평가는 비단 료녕팀과의 시합에서뿐만아니라 길림성축구팀이 세번째로 맞다든 하북성청년팀과의 경기에서도 다시 한번 실증되였다.


하북성청년팀과의 경기는 비가 억수로 퍼붓는 진탕속에서 진행되였다. 북방을 연고지로 한 많은 축구팀들이 진 마당에서의 경기가 말째였듯이 길림성축구팀도 진 마당 경기에서는 속수무책이여서 장기간 합당한 대책을 강구하지 못해 손톱여물을 썰고있던 터였다. 1963년, 길림성축구팀이 을급팀으로 강등하게 된데는 그러한 요소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해 경기가 펼쳐졌던 무한에는 련일 비가 내려 진탕속에서 경기를 펼쳤던것이다. 결국 수중전(水中战)에 약한 길림성축구팀은 련패의 수렁에 깊숙이 빠지고말았었다. 아픈 기억이였다. 그래서 박만복을 비롯한 길림성축구팀의 지도진은 그 결점을 메우느라 이를 악물었다. 뼈저린 교훈을 잊지 않고 큰비가 내리는 날이면 더욱 훈련에 적극적으로 뛰여들어 진 마당 경기에 대비했다.


하북성청년팀과의 경기에서 길림성축구팀은 그 독특한 기술과 전술을 선 보였다. 그날따라 비가 억수로 퍼부었고 경기장에는 금시 물이 그들먹이 고였지만 선수들은 신속히 앞으로 밀고나가 공격을 하다가도 재빨리 후퇴하여 방어태세를 갖추었고 인차 주도권을 틀어쥐고 반격을 개시하군 하였다. 그 바람에 진 마당 경기에서는 내노라 우쭐거리던 하북성청년팀(1964년 전국축구 갑급

팀련맹경기 4등)도 나중에는 별수가 없었던지 1대0이라는 점수로 곱다라니 물러가버리고말았다. 상해로동자팀과 시합을 치를적에도 비가 끊이지 않고 쏟아져 경기장이 감탕처럼 미끄러웠지만 길림성축구팀은 될수록 공을 멈추거나 몰지 않고 뒤와 옆으로의 련락을 주도하며 재빠른 속도로 번개같이 상대방을 제압하며 돌연적인 공격을 들이대군 하였다. 문지기가 달려나와 공을 쳐내고는 미끄러져 넘어지는통에 미처 원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는 바람에 당황해난 수비수가 황급히 꼴문을 지키는 진풍경이 연출됐고 그런 와중에 100메터를 11초 8에 주파하는 동경춘이 눈부신 폭발력을 앞세우고 가동한 득점포로 련속 두꼴이나 토해내며 상해로동자팀도 발치에 꿇리였다.

누군가 모든 스포츠는 결과가 말해준다고 했다.


(목표는 하나, 오직 승리!)


그 시각 지도 박만복을 비롯한 길림성축구팀 상하가 오로지 그 목표를 향해 윽벼르고있었다.(계속)


[신철국 장편스포츠실화] 챔피언 1965


차례(지난 기사는 클릭해 볼수 있습니다)

제1장 시련의 계단

봉변/기회의 신(神)결심출국 류학스승의 마음 문제는 어디에?축구의 고향 잊은것과 잃은것/ 어려운 세월에 제로의 답안 /맨발의 선수 첫발자국 /희망을 향하여 

제2장 재기의 언덕

“백전로장” 원수(元帅)가 준 별호 /최초의 전설들(1) 최초의 전설들(2) /

새로운 출발 /“3종1대”/개천의 룡들(1) 개천의 룡들(2)/ 이사도(二沙岛) 

희로애락/ “몰인정”했던 리유 뒤로 밀린 리발 신입대원 정동권 

제3장 승자는 말한다

원자탄 불청객/ 분노의 벽 빅장대결 귀로의 기쁨/ 영광의 서장(1) 영광의 서장(2) 불멸의 승부(1) 불멸의 승부(2)




신철국

작가


연길명동문화예술원

부원장

【신철국 작가 프로필】

1971년 왕청현 하마탕향 전하촌(汪清县蛤蚂塘乡前河村)출생

연변대학 조선언어문학학부 졸업


연변민족문학원(제1기/1994년), 로신문학원(제30기중청년고급연구토론반·아동문학/2016년) 수료.


‹중국조선족백년실록›집필위원회 위원(스포츠) 력임.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청소년부, '흑룡강신문','길림신문'에서 다편간 편집, 기자로 활약. 연변작가협회 회원.


1986년 아동소설 '신방주인'으로 등단.


'화신문학상','압록강문학상','흑토문학상','연변라지오문학상','상익컵 실화문학상' 등 수상경력 다수. 


단행본 장편스포츠실화 ‹챔피언 1965› 출간.


공저로 ‹60주년에 만난 60인›, ‹중국조선족백년실록›, ‹연변축구의 발자취를 찾아서› 등이 있음.


현재 명동문화예술원 부원장 겸 글짓기지도로 근무.



 안내 : "문학작품"은 sinbalam과 위챗친구하여 보내주시면 등재해드립니다.-신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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